서정동 송북동 송탄동 신장동 중앙동 지산동
비전동 세교동 신평동 원평동 통북동
객사리 도두리 근내리 동창리 남산리 두 리 내 리 두정리 노성리 본정리 노양리 석근리 함정리
노와리 석봉리 대사리 송화리 대추리 신궁리 신대리 신호리 안정리 원정리 추팔리 평궁리
가곡리 갈곶리 견산리 고현리 동천리 마산리 봉남리 신리 야막리 은산리 청호리 하북리
금각리 금암리 내천리 마두리 사리 수월암리 장등리 적봉리 황구지리 회화리
궁리 당현리 동고리 동청리 두릉리 문곡리 방축리 여염리 율포리 좌교리 해창리
교포리 길음리 당거리 숙성리 신리 안화리 양교리 죽리 창내리
고렴리 고잔리 백봉리 삼계리 어소리 어연리 옥길리 율복리 토진리 한산리 현곡리 후사리
내기리 도곡리 만호리 방림리 석정리 신영리 원정리 홍원리 희곡리
권관리 기산리 대안리 덕목리 도대리 방축리 신왕리 운정리 인광리 장수리 화양리 황산리
금곡리 대반리 덕우리 삼정리 성해리 송담리 안중리 용성리 학현리 현화리

 

  1. 서정동
  서정(西井) :
① 예전 양성현에 속하였을 때 서쪽(西)이었고 물맛 좋은 우물(井)이 있었다 하여 유래했다고 하며, 400여 년전에 화강암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틀이 현존한다.
② 현재 행정구역상 서정동은 송탄읍이 시로 승격하고 동을 나눌 때, 서정동의 주요지역이 번지상 서정 ○○○에 해당되었기 때문에 정해진 것으로, 실제 동명의 유래가 된 서정리는 중앙동에 속한다.
점촌(店村) : 우리말로 점말이다. 예전에 옹기를 굽던 공장인 옹기점이 마을에 많았으므로 점촌이라 하였
  다. 1980년대 초까지도 옹기가마가 많이 남아있었다.
지장동(地莊洞) : 2-4통의 마을 이름. 지장동(地藏洞)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지장사(地藏寺)가 있었던 데
  서 유래했다고 한다.
복창동(福昌洞) : 3~5, 14-38통의 마을 이름
  ① 미 공군기지가 생기면서 청소용역을 맡은 ‘복창공사(福昌公社)'가 이곳에 생기면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복이 창성하라는 뜻에서 지었다고도 한다.
신창동(新創洞) : 6-7-15-30통 마을 이름.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미군부대로 출퇴근하기 편한 이곳에
  정착하면서 새로이 생겨난 마을이라는 뜻이다.
황해도촌(黃海道村) : 주로 황해도 피난민들이 많이 모여살아 유래하였다.
절 골 : 신창동의 앞 마을로 약수암(藥水庵)이라는 절이 있어 마을 명칭이 되었다.
사거리(四巨里) : 8-9통의 마을 이름. 신창동, 신장동, 적봉리, 장등리로 통하는 네거리가 있는 곳이라 하
  여 유래했다고 한다. 예전에 이곳에서 큰 장이 열리기도 하였다.
원적봉(原赤峰) : 16통의 마을 이름. 예전에 서탄면 적봉리에서 서정동으로 편입된 마을로, 본래 미군 기
  지가 있는 곳에서 이주하여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 산봉우리(峰)에 나무가 없어 그대로 붉은(赤) 흙이 드
  러나므로 지었다고 한다.
2. 송북동
 
송북(松北) : 송탄시가 승격되면서 새로이 생겨난 행정동으로, 송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였고 송북초등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정해진 듯하다.
송천(松泉) : 1~6-37통의 마을 이름.
  ① 1970년경 탄현마을에서 분리되면서 정해진 명칭으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지산천 옆에 둔 마을이라 샘
  천(泉)을 써서 지었다고 추측되기도 한다.
  ② 1970년대 탄현부락에서 분리되었으며, 물맛이 좋은 샘이 있어서 송탄에서 송(松), 샘에서 천(泉)을 따
  서 송천마을로 명명하였다고도 한다.
건지미(乾芝-) : 7통의 마을 이름. 보통 윗건지미를 말한다.
  잔디 떼가 마를 정도로 건조하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양달말 : 건지미의 동북쪽 마을의 우리말 이름. 해가 잘 드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유래한 것 같다.
응달말 : 14통의 마을 이름
  건지미의 서남쪽 마을의 우리말 이름. 해가 잘 들지않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유래한 것 같다.
북어울 : 건지미 양달말의 뒷 산에 있는 마을 이름
  큰 북어울과 작은 북어울이 있다. 예전에 명태를 가져다 말려 북어를 만들었던 데서 유래한 것 같다.
신흥(新興) : 12-13-15통의 마을 이름.
  예전에 건지미에서 분리되어 형성된 마을로서 새롭게(新) 흥성(興)하라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우곡(牛谷) : 8통의 마을 이름. 우리말 이름은 소골이다.
  ① 예전부터 진주 소씨가 집성촌을 이루었기 때문에 소씨 고을 즉 소골이 되었다고 한다.
  ② 마을의 형세가 소가 누워있는 와우형(臥牛形)이었으므로 소(牛)골이라고도 한다.
동막(東幕) : 9통의 마을 이름. 예전에 삼남대로와 인접하여 주막이 많았다고 한다.
  ① 안성을 서쪽으로 접한 동쪽(東) 끝자락의 마지막(幕) 마을이라 하여 유래하였다고 한다.
  ② 마을 동(東)쪽으로 산이 병풍처럼 둘려 있어 마치 막(幕)을 친 것 같다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독곡동(獨谷洞) : 산중에 외로이 자리잡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오좌동(梧佐洞) : 10통의 마을 이름. 오동나무(梧)에 봉황새가 앉는다 하고,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는다는 말과 같이 오동나무가 봉황새를 돕는다(佐) 하여 유래하였다고 한다.
오좌월(梧佐-) : 오좌동의 우리말 이름.
  ① 5리나 되는 긴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마을 앞에 큰 개천이 흐르고 오리가 많은 곳이라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③ 옛 이름인 오류곡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류곡(五柳谷) : 오리곡의 옛 이름. 예전에 버드나무가 많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는 마을에 5그
  루의 버드나무가 있었다고 해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릿골 : 오리곡의 우리말 이름
3. 송탄동
 
(1) 가재동(4~7통)
가재(佳材) : 마을이 위치한 산의 모양이 가재와 같다고 해서 유래했다고 한다.
가재울 : 가재 마을의 우리말 이름.
상가재 : 6통의 마을 이름. 촌락의 위에 위치했다는 뜻.
하가재 : 7통의 마을 이름. 촌락의 아래에 위치했다는 뜻.
막곡(幕谷) : 5통의 마을 이름.  
  ① 마을 뒤의 막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체로 이런 명칭은 막다른 곳에 있는 마을에서 나타난다.  
  ② 마을 뒷산이 성과 같고 그 아래 마을이 군대의 막사와 같다고 해서 유래했다고 한다.  
  ③ 「큰말(방혜동)-가운데말(중리)-아랫말(막곡)」로 불려지고 있으므로 끝에 마을이라는 의미의 막곡(莫谷)으로도 표기하고 있음.
중리(中里) : 4통의 우리말 이름. 촌락의 가운데 있다는 뜻.
방혜동(芳惠洞) : 5통의 마을 이름. 조선시대에 방효리(芳孝里)였는데 예전에 마을을 지나던 스님이 “뒷 마을의 산세가 꽃(芳)과 같아 복을 받을(惠) 것”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지었다 한다.
뱅여울 : 방혜동의 우리말 이름. 방여울이라고도 한다.
감나무골 : 지금은 없어진 곳으로 감나무가 많은 마을이라는 뜻.
사당리(祠堂里) : 사당재라고도 한다. 재너머에 사당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 지금은 막곡과 합쳐졌다.
(2) 도일동(12~15통)
도일(道日) : 여좌울-여좌월 또는 되일리라고도 하는데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원도일 : 12통의 마을 이름. 도일 마을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곳이라는 데서 유래
내리(內里) : 촌락의 가운데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의 안말을 한자로 바꾼 것으로 새말-깊은골-능말-갓골 등 여러 자연마을이 있다.
상리(上里) : 15통의 마을 이름. 촌락의 위쪽에 위치했다는 뜻인 듯 하며, 석씨(石氏)와 소씨(蘇氏)가 천 년씩을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하리(下里) : 13통의 마을 이름. 촌락의 아래(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 원주원씨 동족 마을이 있다.
작은 여호실 : 내리에 있다. 작은 여의실이라고도 하며 뜻은 알 수 없다.
큰 여호실 : 내리에 있다. 큰 여의실이라고도 하며 뜻은 알 수 없다.
사창골(司倉) : 사창이 있었던 마을이라는 뜻.
양성곡(陽城谷) : 예전에 이 마을이 양성현과 관련되어 유래가 된 듯하다.
배나무골 : 배나무가 있던 고을이라는 뜻.
샛골(間谷) : 사이에 있는 고을 또는 골짜기라는 뜻. 대개 마을이나 산 또는 내의 사이에 있는 마을의 명칭.
독치골 : 자세한 유래를 알 수 없다.
감나무골 : 감나무가 있었던 마을이라는 뜻.
내리(內里) : 14통의 마을 이름. 가장 안쪽(內)에 있는 마을(里)이라는 뜻.
안골 : 내리의 우리말 이름.
정골(鼎谷) : 용광로터에서 솥을 만들어내던 골짜기라는 뜻이라 한다.
산막골(山幕谷) : 산막이 있던 마을이라는 뜻.
원당골(院堂-) : 자세한 유래를 알 수 없다.
대마거리(待馬--) : 장군이 말을 기다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갑골 : 자세한 유래를 알 수 없다.
투구봉 : 덕암산의 한 봉우리인데, 산의 모양이 투구와 닮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운터말 : 자세한 유래를 알 수 없다.
안말 : 내리의 안쪽 골짜기에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능말 : 원주 원씨 선영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깊은골 : 깊은 골짜기에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울음밭 : 원균장군의 애마가 울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숫돌고개 : 숫돌을 갈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3) 모곡동(1통)
모곡(茅谷) : 1통의 마을 이름. 마을 옆을 지나는 도일천 변에 띠풀이 무성하였으므로 띠풀(茅)이 많은 고을(谷)의 의미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띠우지 : 모곡의 우리말 이름.
(4) 장안동(8통)
장안말(長安-) : 오래 전에 장터거리가 있었으므로 ‘장터안 마을'이란 뜻의 장안말이 되었다고 한다. 한자는 별 의미 없이 그것을 음차한 것 같다.
(5) 칠괴동(2통)
칠괴(七槐) : ① 마을 공동우물 주변에 7그루의 느티나무(槐)가 있었는데, 그 나무의 신령으로 7장사가 태어났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② 마을에 7개의 느티나무 정자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칠구쟁이 : 칠괴마을의 우리말 이름. 칠괴마을과 관련된 사투리에서 유래하였다고 추정된다.
(6) 칠원동(9통~11통)
칠원(七院) : 9통의 마을 이름. 본래 갈원(葛院)으로 불리다가 조선말기에 칠원으로 바뀌었다. 이곳은 조선시대 삼남대로에 위치하여 국가에서 운영하는 숙박소인원이 있던 곳으로 주변에 칡이 많아 명칭으로 삼게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말기의 어느 왕이 각 고을을 순례하다가 갈원에서 머물렀는데, 병이나 그 원인을 따지니 칡 때문이었다.-혹은 지병이 나았다고도 한다-하여 그 이후부터 칠원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칡은 한자로 갈이므로 갈원은 마을의 특징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고, 칠원은 음차한 것이다. 한편 갈왕골 또는 갈왕굴이라는 명칭은 칡이 무성한 고을이라는 뜻이다.
수촌(水村) : 11통 마을 이름.
  ① 마을 앞 물을 이용한 물방아가 있었다고 하여 ‘물방아 거리'라고 불렸고, 이로 인해 수촌으로 불렸다.
  ② 마을 앞의 통복천을 유일한 농업용수 및 식수로 사용할 때 그 중요함을 생각해서 불렀다.
신촌(新村) : 10통의 마을 이름. 새말 즉 새로운(新) 마을(村)이라는 뜻이다.
새말 : 신촌의 우리말 이름. 산 골짜기에 새 터를 잡고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이라한다.
4. 신장1동
  신장(新場)
  ① 한국 전쟁 이후 미군 기지가 들어서고 인구가 늘자 새로운(新) 장(場)이 형성되었다고 유래했다고 한다.
  ② 구장터를 대신하여 들어선 새로운(新) 장터(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새장터 거리 : 옛 신장리의 우리말 이름이다.
제역동(除役洞) :
  ① 신사무옥(辛巳誣獄) 때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죽은 최수성(崔壽城)을 복권하고 영의정으로 추증하면서 그 무덤 주변 10리안의 주민들에게 묘역의 정화에 힘쓰라는 뜻에서 부역을 면제해주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② 조선 건국후 고려 때 충신이었던 강릉최씨가 은거하였는데 정부에서 그를 달래기 위해 마을에 부과되는 모든 부역(役)을 면제(除)하였다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젯골 : 제역동의 우리말 이름. 역이 면제된 마을이라는 뜻이다.
남산터(南山-) : 1~6-11-12-16-17통의 마을 이름. 남쪽에 산이 있다 하여 지어졌다고 한다.
지골 : 남산터의 다른 이름. 짓골이라고도 한다.
  ① 지대가 낮아 비만 오면 장화 없이는 못 살 정도로 땅이 질어진다고 하여 유래 했다고 한다.
  ② 이 곳에 쑥(芝)이 많았다 하여 유래했다고도 한다. 정확하지는 않다.
구장터(舊場-) : 10통의 마을 이름. 1880년경 진위현 일탄면(一炭面) 지역으로 장이 있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뒤에 장이 봉남리로 옮겼다가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자 서정리로 옮겼다고 한다.
목천동(木川洞) : 1-8-9-13-15통의 마을 이름.  
  ① 하천 제방으로 장마가 지면 동막쪽에서 떠내려 오는 나무토막을 건져내어 땔나무로 이용했다고 한다.
  ② 마을 앞 하천의 좌우로 숲이 무성하고, 나무로 만든 다리가 마을로 통하였다고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나무내 : 목천동의 우리말 이름.
5. 신장 2동
  밀월동(密月洞) : 6~12통의 마을 이름. 한국전쟁 이후 새로이 형성된 마을로 수풀이 우거진(密) 곳으로 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빛(月)이 아름답다고 해서 유래했다고 한다.
송월동(松月洞) : 13~23통의 마을 이름.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마을로, 소나무 숲(松) 사이로 비치는 달(月)이 아름답다고 해서 지어졌다고 한다.
6. 중앙동
 

(1) 이충동
이충(二忠) : 조선 중종대 충신 조광조(趙光祖)가 이곳에서 소년기를 보냈고 인조 대의 충신 오달제(吳達濟)의 옛 집이 있었기 때문에 두 충신의 발자취가 있는 곳 이라는 뜻.
동령말(東嶺-) : 13통의 마을 이름.
  ① 마을이 부락산 남서쪽 줄기에 위치하고 양 옆으로 산이 있으며, 가운데 높은 고개가 있었으므로 동쪽(東)으로 난 고개(嶺) 마을이라 하였다고 한다.
  ② 지리적으로 양편에 산으로 싸였고 예전에 명한문(明閑門)이 있었는데, 그 동편고개에 있다하여 유래.
동녱이 : 동령말의 우리말 이름. 동령에서 변화한 것 같다.
석정(石井) : 15통의 마을 이름. 옛날에 어떤 왕이 이곳을 지나는 길에 물을 마셨는데 물맛이 좋아 우물을 돌로 쌓으라 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돌우물 : 석정의 우리말 이름. 도룸물이라고도 한다.
신리(新里) : 14통의 마을 이름. 본래 산 넘어 은행동에 마을이 있었으나 원인불명의 화재가 계속 발생하였으므로 견디다 못해 이곳으로 옮기면서 지었다고 한다.
샛터말 : 신리의 우리말 이름.
광말 : 반지산 남쪽에 있는 마을의 이름. - 성물백이 : 성문과 가까운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암탉골 :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2) 장당동
장당(獐堂) : 이곳에 있는 산이 노루(獐)의 형상이고 근처에 인가(堂)가 있다 하여 지었다고 한다.
원장당(元獐堂) : 11통의 마을 이름. 장당 마을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는 뜻.
노루댕이 : 원장당의 우리말 이름. 노루쟁이라고도 한다. 장당이 순 우리말로 ‘노루당'이므로 변화한 사투리로 추정된다.
방아다리 : 원장당의 안쪽 마을로 물방아가 있어 유래하였다고 한다.
광천(廣川) : 12통의 마을 이름. 마을 앞에 넓은(廣) 내(川)가 있다해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너부내 : 광천의 우리말 이름. 넓은 내에서 변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두집매 : 광주 김씨 두 집이 처음 이사와서 정착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광귀(廣歸) : 12통의 마을 이름. 광천마을 뒷편에 있으며, 군사혁명정부에서 1961년 귀농정착사업 시행으로 광천마을 뒤편 야산을 「광천귀농 정착 사업장」으로 지정한 뒤, 귀농정착민 20여 가구가 정착하여 형성된 마을로 광천마을에서 분리되어 송탄읍의 46번째 행정리로 「광천귀농」이라 하였다. 광천의 ‘광'과 귀농의 ‘귀' 를 합하여 ‘광귀'라고 부르기도 한다.
노루쟁이 외집매 : 광귀 마을의 우리말 이름. 경주 김씨 한 집이 이 마을에 이사와서 정착한 데서 유래.
감나무골 : 감나무가 많이 자라는 데서 유래한 것 같다. 평택시 중앙동 장당(獐堂)마을로 불러 주세요

평택시 중앙동 12통 주민이 마을 이름을 변경하고 광귀마을에서 장당마을로 불리워 지도록 하기위하여 이정표제막, 새 명칭 알리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다음은 신문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2003.4.29(화)인천일보>
“앞으로 ‘장당마을'이라고 불러 주세요” 평택시 중앙동 12통(통장 조영식)주민들이 마을 이름을 ‘광귀마을'에서‘장당마을'로 고치고 행정관서 등 주변에 장당마을로 각인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평택군지와 송탄시사의 기록에 의하면 원장당.광천.광귀로 나뉘어 있는 장당리의 한 자연부락인 광귀마을은 1960년 당시 군사혁명정부의 귀농정착사업 시행으로 서울 등지서 이주한 20여가구가 정착하여 형성된 마을로 광천마을 뒤편에 위치해 있다. 서정리역에서  서남쪽으로 1.5km지점이며 동쪽으로는 효명중.고와 장당산단, 남쪽으로는 고덕면 여염리와 경계하는 곳이다. 마을 명칭은 광천의 ‘광“자와 귀농의 '귀‘자를 따서 정한 것으로 송탄읍의 46번째 행정리로 되어있다. 하지만 농사 경험이 없는 정착민들은 현지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정부에서 무상으로 분양받은 토지와 주택을 버리고 모두 떠나 현재는 마을 이름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이에 주민들은 ‘광귀마을'은 듣기에도 안좋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증명하듯 크게 왜곡되어 잘못 표기되어 있다'며 주민 회의를 통해 마을명을 ‘장당마을'로 새로 결정하고 이 사실을 적극 알리고 있다.
‘장당'은 마을 뒤 산세가 노루의 형상이고 실제 노루가 많이 살고 있었다 하여 유래되 노루장(獐)과 집당(堂 )을 택해 지금까지 불리워 지고 있다.
한편 주민들은 2003년 4월 28일 장당-고덕간 삼거리와 광동제약 앞 등 2곳에서 장당마을 이정표석 제막행사를 펼쳐 옛 지명의 올바른 표기로 지역 정체성을 되찾는 시간을 가졌다.(평택=한익희 기자)

(3) 중앙동(옛 서정리 지역)
중앙 : 1981년 7월 평택군 송탄읍이 송탄시로 승격되면서 시의 중앙에 있었으며, 시청사가 중앙마을에 있었던 데서 유래하였다.
중앙마을 : 옛 서정리의 중앙에 있었다고 하여 유래된 듯하다.
신선동(新鮮洞) : 3-17통의 마을 이름. 오래된 정자나무 경치가 좋고 환경이 신선하다는 뜻, 또는 신선처럼 살기 좋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서리(新西里) : 4-19통의 마을 이름. 서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
서두물 : 5-6통의 마을 이름. 서둔물-서둠물-서우물이라고도 한다. 서정부락의 우리말 이름이다. 서정리 서쪽에 위치한 곳으로 우물처럼 들어갔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갈평(葛坪) : 7-8통의 마을 이름.
  ① 예전에 홍씨가 처음 살게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뒤에 점차 마을이 길게 확장되면서 ‘칡처럼 번성
  한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마을 앞에 하천에 갈대가 우거져 있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번성(蕃城) : 9통의 마을 이름.
  ① 마을 앞에 번성이라는 성이 있어 유래했다고 한다.
  ② 마을의 번성을 기원하고자 지었다고도 한다.
7. 지산동
  지산(芝山) :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야산에 떼풀이 무성했다고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좌동(佐洞) : 1~10, 12, 14~22통의 마을 이름.
  반달형상을 한 곳이 여섯 군데 있는데, 여섯 곳이 원초 마을을 돕는다는(佐)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좌월 : 좌동의 우리말 이름. 좌울이라고도 한다. 울-월 모두 고을을 뜻하는 말이다.
탄현(炭峴) : 11-13통의 마을 이름. 예전에 참나무가 울창하여 숯을 굽는 곳이 많았으며, 숯장사들이 많이 왕래하면서 이 고개에서 많이 쉬었다고 한다. 결국 숯(炭)이 나는 고개(峴)라는 뜻이다.
쑥고개 : 숯고개에서 변화된 명칭. 본래 탄현동 지역만을 뜻하였으나 버스 정류장이 있었던 곳이므로 그 뜻이 확대되어 송탄 지역 전체를 부르던 말로 쓰이기도 하였다.


  1. 비전 1동
 
비전(碑前) : 마을이 큰 비(碑)가 있는 앞(前)에 있었다 하여 유래하였다고 한다. 덕동산 기슭에 있던 부처골의 비석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는 그 비가 대동법 시행기념비일 수도 있다.
산직촌(山直村) : 22통의 마을 이름. 이곳에 산직이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산디촌 : 산직촌이 음운상 변화한 것이다.
이곡(梨谷) : 1통의 마을 이름. 식민지 시기 일본인들이 산을 개간하여 배과수원을 만들어 배가 주산물이 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배나무골 : 이곡의 우리말 이름.
서재(西材) : 안성에서 재를 넘어 이사와서 살면서 지은 명칭이라고 한다.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은성(銀城) : 주변에 은행나무가 많아서 유래했다고 한다.
자란리(紫蘭里) : 근처에 자란꽃이 피는 자란산이 있어 유래했다고 한다.
재랭이 : 자란리의 우리말 이름. 자란리에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골(堂谷) : 자란리의 다른 이름. 자란산 산꼭대기에 부채 모양의 가죽 나무 밑에 서낭당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상서재(上西才) : 12통의 마을 이름. 북쪽에 있는 서재 마을의 이름.
하서재(下西才) : 13통의 마을 이름. 남쪽에 있는 서재 마을의 이름.
모산(毛山) : 14통의 마을 이름. 마을에 잔솔과 풀(毛)이 무성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죽백동(竹柏洞) : 산에 대나무(竹)처럼 곧게 뻗은 측백나무(柏)가 많이 자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죽백(元竹柏) : 17통의 마을 이름. 죽백동 여러 촌락 가운데 가장 먼저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
침교(砧橋) :
  ① 내촌에서 이 마을로 가는 도중에 내가 있는데, 디딜방아처럼 보이는 곳에 다리를 세웠던 데서 유래.
  ② 그 다리를 방아공이로 놓았다고 해서 붙여졌다고도 한다.
방아다리 : 침교의 우리말 이름.
내촌 : 죽백과 방아다리의 안쪽(內)에 있는 마을(村)이라는 뜻.
안골 : 내촌의 우리말 이름이다.
청룡말 : 19통의 마을 이름. 청룡동(靑龍洞)이라고도 한다. 백운산에서 여러 갈래로 산맥이 뻗었고 숲이 울창(靑)하여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형국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월곡동(月谷洞) : 20통의 마을 이름. 월구리라고도 한다. 아름다운 둥근달을 볼 수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때문에 마을 동산 위에 망월대(望月臺)가 있다.
달곡 : 월곡동의 우리말 이름.
관동(官洞) : 21통의 마을 이름. 향교터가 있는 등 예전에 관아가 있었던 곳으로 짐작만 된다.
귀골(貴谷) : 관동의 다른 이름.
굿구리 : 관동의 다른 이름.
옥터골(獄垈谷) : 예전에 옥터가 있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향교동(鄕校洞) : 지금은 없어졌으나 예전에 향교가 있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가내 : 자세한 유래를 알 수 없다.
2. 비전2동
 
어인남리(於仁南里) : 6~9통의 마을 이름.
  ① 덕동산과 매봉산 가운데 남쪽의 탁트인 곳에 있다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② 이두로 어인(於仁)은 너른을 뜻하므로 너른 들이 남쪽에 있다는 뜻으로 추정된다.
어리내미 : 어인남리의 우리말 이름.
계인(癸仁) : 어인남리의 다른 이름. 계해년에 상부상조하는 계와 같은 성격의 계인조합을 설치하였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계해년에 어인남리 사람들이 계를 만들었으므로 계와 인을 합친 것이다.
문화촌(文化村) : 1통의 마을 이름.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새로이 정착하여 생긴 데서 유래했다.
상신작로(上新作路) : 5통의 마을 이름. 안성 가는 길 옆에 취락이 형성되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소사(素沙) :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① 예전 양성에 속하던 때에 소사장이 열리던 곳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큰 전투가 벌어지기도 한 곳이다.
  ② 평평하고 너른 뜰을 뜻하는 소(素)와 하천에 인접한 마을을 뜻하는 사(沙)가 합쳐져 평평하고 넓은 들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원소사(元素沙) : 13통의 마을 이름. 소사 가운데 가장 먼저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이다.
용이동(龍耳洞) : 백운산에서 뻗어내린 산맥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동쪽은 용머리의 형상으로 안성시 공도면 용두리이고, 서쪽은 용(龍)의 귀(耳) 언저리에 해당된다고 해서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송전(松田) : 15통의 마을 이름. 야산 가운데 소나무가 무성한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솔밭말 : 송전의 우리말 이름.
구룡동(九龍洞) : 16통의 마을 이름. 구룡말이라고도 한다. 백운산으로부터 산맥이 동남향으로 뻗어내려 느름골, 배오개골, 신선골, 오른가리골, 미나올골 , 옥골, 소사물골, 자바사리골 등 아홉 골짜기를 도는데, 그것이 아홉 마리의 용이 용트림을 하는 형국이며, 그 산기슭에 마을이 자리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현촌(玄村) : 17통의 마을 이름. 예전에 현씨가 대성(大姓)을 이루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전에는 달성 서씨가 많아 서촌(徐村)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신흥(新興) : 18통의 마을 이름. 1975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마을로 새로이(新) 일어난다(興)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소죽골 : 쇠죽골이라고도 한다. 마을의 지형이 소가 죽을 먹는 형국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예전에 세곡(稅穀)의 창고가 있었으며 이곳에서 그것을 운반하는 소들의 죽을 쑤어먹였다는 데서 유래했다.
소떼골(牛隊谷) : 이곳에 세곡(稅穀)을 운반하는 소가 많은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서지골(西直谷) : 소장터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창말 : 예전에 배가 드나들던 선착장이 있었고 공물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3. 세교동
 
세교(細橋) : 예전에 평택을 가기 위해 통복천을 건너는 길고 가느다란(細) 다리(橋)가 있었던 데서 유래.
동삭동(東朔洞) : 인접한 지제동의 동쪽에 위치하였는데, 지제리에서 볼 때 동녘에서 뜨는 초생달을 보고 동삭이라고 했다 한다.
원동삭 : 1통의 마을 이름. 동삭 마을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동삭골 : 2통의 마을 이름.
영신(永新) : 3통의 마을 이름. 조선시대까지 영신현의 읍치가 있던 곳이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동촌(東村) : 영신의 다른 이름. 동삭 마을의 동쪽(東)에 있는 마을(村)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촌(大村) : 영신의 다른 이름. 관아가 있던 큰 마을이었던 데서 유래한 것 같다.
은실(銀室) : 6-14-15-19통의 마을 이름. 은곡(銀谷)이라고도 한다. 이곳의 지형이  뱀의 모양을 하고 있고, 은행나무가 많아 골짜기를 이루어 음곡(陰谷)이라고 하다가 은실로 바뀌었다고 한다.
신촌(新村) : 은실의 마을 이름. 새롭게(新) 형성된 마을(村)이라는 뜻.
하리(下里) : 은실의 아랫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벌잔다리 : 하리의 우리말 이름. 따로 떼어져 있는 잔다리(細橋)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한 것 같다.
안잔다리 : 잔다리 안쪽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제동(芝制洞) : 이곳에 떼풀(芝草)이 무성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제울 : 지제동의 우리말 이름.
구대(舊垈) : 10통의 마을 이름. 처음 마을이 형성된 오래된(舊) 터(垈)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
당현(堂峴) : 11통의 마을 이름. 예전에 당집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제말 : 당현의 우리말 이름.
울성(蔚城) : 12통의 마을 이름.
  ① 근처의 태미산을 비롯한 작은 산들이 울타리(蔚)처럼 둘러져있어 마치 성(城)의 형세와 같았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태미산 산성 안쪽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해서 울성이라고 불렸다고도 한다.
장터거리 : 예전 울성마을에 장터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건너말 : 작은 마을이라고도 한다. 울성 마을의 건너쪽에 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4. 신평동
 
신평(新平) : 경부선 철도가 건설된 이후 현재 평택역의 남쪽에 시가지가 형성되었으나 1946년 대홍수를 겪고난 뒤 이전 논의가 일어나고 한국전쟁 이후 새로운 도시 계획에 따라 현재의 지역에 새로이 시가지가 형성된 곳이라는 뜻에서 지어졌다.
유천동(柳川洞) : 9~11통의 마을 이름. 마을 동남쪽에 안성천(川)이 흐르고 버드나무(柳) 숲이 울창하여 생긴 이름이다. 예전에는 ‘진위 땅 버드나무골'로 불렸다고 한다.
양성버드내 : 9통의 마을 이름. 예전에 양성현에 속하였던 곳이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버드내 : 10통의 마을 이름. 유천동의 우리말 이름.
황룡동 : 11통의 마을 이름.
합정(蛤井) : 예전에 배가 들어왔고 또한 조개(蛤)가 많이 나는 곳이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기(新基) : 12통의 마을 이름. 예전에 소사장터에 사람이 모여들어와 새로이(新) 터(基)를 잡고 마을을 이루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배미(夜味) : 신기의 우리말 이름.
  ① 예전에는 이곳까지 배가 들어와 바닷가로 돌출한 산봉우리에다 배를 매어두었다는 데서 유래.
  ② 신라시대 이두에서 연유하여「夜味」로 표기하기도 하며 뜻은「논배미」라고 마을 입구 표석에 기록.
조개터(趙家垈) : 13통의 마을 이름.
  ① 조씨(趙家)가 살던 터(垈)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조개가 많이 나는 곳이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통미(通味) : 16통의 마을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오미 : 오산이라고도 한다.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하신작로(下新作路) : 새로 생긴 안성가도의 아랫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성동(城東) : 성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지만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직산동 : 자세한 유래를 알 수 없다.
신동 : 자세한 유래를 알 수 없다.
5. 원평동
 
원평(原平) : 경부선이 부설되고 평택역이 생기면서 시가지가 형성된 곳으로 대홍수 이후 수리에 문제가 있어 경부선 동쪽으로 역과 시가지가 옮겨지기 전까지 예전(原)에 평택의 중심지가 있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덕리(新德里) : 11-12통의 마을 이름. 옛날에 신덕포가 있었던 곳에서 유래했다.
뚝너머 : 신덕리의 다른 이름. 평택초등학교 앞에 커다란 제방뚝이 있었고 그 너머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평(高坪) : 15통의 마을 이름. 높은(高) 들(坪)에 있는 마을이란 데서 유래했다.
창월(倉越) :   ① 조선시대 순화군의 궁방전에서 거둬들인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는데, 이 창고의 너머에 있는 동네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② 소작료로 받은 곡물을 뱃터에서 수송하는 관계로 큰 창고가 있던 마을이라는 뜻이다. 월은 마을을 뜻하는 것이다.
화촌(華村) : 16통의 마을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아랫마을 : 원통복의 아래지대에 있던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군문동(軍門洞) : 17통의 마을 이름. 조선시대 군물리(軍勿里)가 있던 곳으로 뒤에 발음이 비슷한 군문리(軍門里)로 바뀌었다. 청일전쟁 때 청군이 주둔했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은 군문리라는 명칭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꾸며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진위현에서 평택현(팽성읍)으로 건너가는 나루가 있었다.
간포(間浦) : 원군문(元軍門)과 황룡동 사이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대동(新垈洞) : 19통의 마을 이름. 바닷물이 드나들던 간석지를 간척하고 새로이(新) 터(垈)를 잡은 마을이라는 뜻.
새터마을 : 신대의 우리말 이름. 원신대(原新垈)라고도 한다.
삽교(揷橋) : 18통의 마을 이름. 지금 신대교로 바뀐 그 자리에 삽다리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잔(高棧) : 20통의 마을 이름.   ① 마을 앞에 통복교가 있었는데 높은(高) 곳에 다리(棧)가 있었던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② 아산만의 조수가 밀려들어 곶(串)이 형성되었던 마을이어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신설촌(新設村) : 신대 마을 가운데 가장 늦게 새로이(新) 만들어진(設) 마을(村)이라는 뜻.
석바랑 : 신설촌의 우리말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6. 통복동
 
통복(通伏) : 예전에 통보(通洑)라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는데, 뒤에 통복보로 바뀌면서 이 지역의 이름에 통복이 붙기 시작하였다.
통복갯 : 통복갯벌에 생긴 마을이란 데서 유래했다.
원통복(元通伏) : 통복 지역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다.
윗마을 : 원통복의 우리말 이름.
낙촌(樂村) : 1-2-6-7-12-13통의 마을 이름.
  ① 즐거운 마을이 되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일명 ‘낭떠러지'(落村)라 하며, 마을의 지형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점촌(店村) :
  낙촌의 다른 이름. 조선 후기 박해받던 천주교인들이 은거하며 옹기를 만들던 곳이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동삼거리(東三巨里) : 예전 소시장 근처로 동쪽으로 세 갈래 길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서삼거리(西三巨里) : 소시장 서쪽으로 난 세갈래 길에 있던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1. 객사리
 
객사(客舍) : 평택현의 관아가 있던 곳으로 관청을 찾아오는 벼슬아치나 양반이 묵던 숙소인 객사가 있었던 곳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동촌(東村) : 객사 2리의 마을 이름. 옛 평택현 읍내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주막거리 : 동촌의 다른 이름으로 주막이 많았다는 데서 유래.
서촌(西村) : 객사 3리의 마을 이름. 옛 평택현 읍내의 서쪽에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정리 : 객사 4리의 마을 이름. 연못뚝이라고도 한다. 향교와 관아 사이에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동쪽 뚝방쪽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연못은 해방 후 경지정리와 택지조성으로 없어졌다.
향교말(校村) : 객사 5리의 마을 이름. 서촌의 다른 이름으로 향교의 주변 마을이 라는 데서 유래했다.
2. 근내리
 
근내리(近乃里) : 그네리를 한자로 옮긴 것.
그네리 : 근내리의 우리말 이름. 근네골이라고도 한다. 마을의 형태가 그네와 같다는 데서 유래.
3. 남산리
  남산(南山) : 평택현 관청 남쪽의 산에 있던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귀농촌(歸農村) : 남산 2리의 마을 명칭. 피난민들이 정착해 살기 시작한 곳으로 농촌으로 돌아왔다는(歸) 뜻에서 유래한 것 같다.
산지골 : 남산 3리의 마을 명칭.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아랫사거리 : 산지골의 다른 이름.
4. 내리
 
내리(內里) :   ① 옛 아산현 읍내면의 중심지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옛 백제시대 하팔현의 읍치(邑治)였던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서면(西面) : 읍의 서쪽(西)에 면(面)한 마을이란 데서 유래한 것 같다.
5. 노성리
 
노성(老成) : 1934년 행정구역 변경 때, 노중리, 노상리와 신성리가 합치면서 노중-노상의 ‘노'와 신성의 ‘성'을 따서 마을 명칭을 지은 데서 유래하였다.
신성(新成) : 새로이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
노중리(老中里) : 노성 2리의 마을 이름. 노산상리-노산중리-노산하리가 한 촌락이 었을 때 가운데에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6. 노양리
 
노양(老陽) : 경양면(慶陽面)의 인처리(仁處里)-노산리가 합치면서 노산리의 ‘노'와 경양의 ‘양'을 따서 마을 명칭을 지은 데서 유래하였다.
계양(桂陽) : 노양1리의 마을 이름. 500여 년 된 노목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또는 경양면의 경양에서 계양으로 음운이 변화한 것 같다.
노산리(老山里) : 노양 2리의 마을 이름. 노산이라는 산에서 유래된 듯하다.
꽃동산 : 노산리의 우리말 이름. 노산에 붉은 꽃이 만발했다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구름목 : 노산리의 우리말 이름.
7. 노와리
  노와(老瓦) : 예전 아산현의 ‘노연리(老連里)'와 ‘와야리' 두 마을이 합쳐지면서 각각의 첫 자를 따온 것.
동면(東面) : 노와 1리의 마을 이름. 동쪽(東)에 면(面)해 있다는 데서 유래한 것 같다.
왜골(瓦也里) : 노와 2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 봉씨(奉氏)가 들어와 기와집을 짓고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양천(良川) : 노와 3리의 마을 이름. 물맛이 좋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수용소(收容所) : 노와 4리의 마을 이름. 장단군 지역 피난민이 정착해 살면서 장단군민 수용소로 출발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새동네 : 양천의 다른 이름으로 1950년대 수해를 입은 평궁리 주민들이 옮겨 살면서 새로운 마을이 형성된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8. 대사리
  대사(大沙) : 조선초기에 형성된 포구를 낀 마을이었는데, 모래가 많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수용소 : 대사 2리의 마을 이름. 노와 4리 수용소 마을과 인접하여 유래한 것 같다.
9. 대추리
  대추(大秋) : 개펄을 간척한 토지에서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혼지머리(混池頭) : 삼국시대부터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건너가는 나루가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평택현의 기우단이 있었다.
10. 도두리
  도두(棹頭) :   ①『여지도서』등에는 도두정(棹頭亭)이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 입구에는 도두암(棹頭巖)이라는 높은 바위벼랑이 있다. 이곳에는 성리학자인 우남양(禹南陽) 처사가 살고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벗이었던 홍익한이 심양에서 순절한 것을 알고 벼랑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자결하였다 하여 부술 돈(頓)과 머리 두를 따서 돈두정리(頓頭亭里)라고 하였다. 그 후 행정 개편 때 서해의 조수가 드나드는 곳으로 돛단배가 왕래하였으므로 돛대란 뜻의 ‘도'와 돈두암에 얽힌 사연의 ‘두'를 따서 도두리라고 고쳤다고 한다.   ② 옛날에는 마을 앞이 바다와 갯벌로 이루어져서, 지형이 돛대머리와 같다고하여 도두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신흥(新興) 부락 : 도두 2리의 마을 이름. 암기원 동네라고도 한다. 갯펄을 간척하여 암기원 들에 전답을 만들면서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
장단(長端) 부락 : 한국전쟁 이후 장단군 사람들이 피난와서 집단 정착한 곳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말랭이 : 언덕바지에 생긴 마을이란 뜻.
11. 동창리
  동창(東倉) : 옛 하팔현의 중심 읍내로 내리라고 하였으며, 또는 서면 내리라고도 하였다. 내리의 동쪽에 창고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듯하다.
염소말 : 고려 때 염정승이 태어난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2. 두리
  두리(頭里) : 마을 입구의 산이 소가 누워있는 형국으로 마을이 소의 머리(頭)에 해당한다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머래 : 두 1리의 마을 이름. 마을 이름과 관련된 소머리의 머리에서 변화된 것 같다.
다락말(樓村) : 두 2리의 마을 이름.   ① 예전에 이 곳에 관가정이라는 누정(樓亭)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주변 산의 형세가 다락처럼 생겼다 하여 다락마을을 줄여 다락말로 했다고 한다.
13. 두정리
  두정(斗井) : 두곡리와 월정리를 합치면서 새로 지은 명칭이라고 한다.
큰농고지 : 두정 1리의 마을 이름. 큰 농사를 짓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한 것 같다.
월정마을 : 두정 1리의 마을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대농곡(大農谷) : 두정 2리의 마을 이름. 큰농고지의 한자 명칭이다.
도화동(桃花洞) : 두정 3리의 마을 이름. 봄철 복숭아 꽃(桃花)이 피면 무릉도원같이 보기 좋은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한 것 같다.
14. 본정리
  본정(本井) : 예전의 본언리(本堰里)와 경정리(鯨井里)의 일부가 합쳐지면서 두 마을의 명칭 가운데 ‘본'과 ‘정'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수리시설인 제언이 있었다고 한다.
새나리 : 본정 1리의 마을 이름. 신나리라고도 한다. 본정리의 우리말 이름이다.
아리랑고개 : 본정 2리의 마을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15. 석근리
  석근(石斤) : 석교리와 서근포 마을이 합쳐지면서 두 마을의 명칭 가운데 ‘석'과  ‘근'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흙다리(石橋) : 예전에 마을 앞의 큰 길에 흙다리가 있어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본래 석교는 돌다리란 뜻이다.
서근보 : 석근 2리의 마을 이름. 마을에 보(洑)가 있어 마을 유래로 삼은 것 같다.
16. 석봉리
  석봉(石峰) :   ① 흑석리(黑石里)라고도 한다. 이 마을은 안성천 하류에 서해안 개펄과 접하는 곳 에 있다. 마을에 홀로 떨어진 자그마한 산봉우리가 물결을 타고 앉았는데, 그 곳에 검은 돌이 있다 하여 흑석리라고 하였다. 뒤에 검은 돌이 있는 봉우리라는 뜻에서 석봉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② 흑석리와 원봉리가 합쳐지면서 ‘석'과 ‘봉'을 떼어 지었다고도 한다.
검은돌 : 석봉리의 우리말 이름이다.
17. 송화리
  송화(松花) : 송중리(松中里)-송하리(松下里)-개화리(開花里) 등 세 마을이 합쳐지 면서 ‘송'과 ‘화'를 따서 지은 명칭이라고 한다.
개화(開花) : 송화 1리의 마을 이름. 송호동이라고도 한다. 옛적에 진달래꽃이 수 놓은 듯 피었다 하여 지은 이름이라 한다.
송하(松下) : 송화 2리의 마을 이름. 소나무 숲(松)이 우거진 곳의 아래(下)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
신당골 : 송하의 다른 이름으로 새로이 만들어진 마을이라는 뜻이라 한다.
송중리 : 송화 3리의 마을 이름. 촌락 한 가운데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큰말 : 송화 3리의 우리말 이름. 송중리의 다른 이름으로 가장 송중리-송하리-개화리 가운데 큰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윗사거리 : 송화 3리의 우리말 이름. 마을의 윗쪽 사거리라는 뜻이다.
신흥 : 송화 4리의 마을 이름. 마을이 새롭게(新) 흥성(興)하자는 뜻에서 지어진 것 같다.
언덕마을 : 송화 5리의 마을 이름. 마을이 약간 높은 언덕에 있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18. 신궁리
  신궁(新宮) : 신흥리(新興里)와 하궁리가 합쳐지면서 두 마을의 명칭 가운데 ‘신'과 ‘궁'을 따서 이름지었다고 한다.
하궁리(下宮里) : 신궁 1리의 마을 이름. 궁리(宮)의 아랫쪽(下)에 있다는 데서 유래한 것 같다.
중새터 : 신궁 1리의 우리말 이름.
19. 신대리
  신대(新垈) : 새로이(新) 터(垈)를 잡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조선후기 마을이 새로 생기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새터 : 신대 1리의 우리말 이름.
영창 : 신대 2리의 마을 이름.
장단 : 신대 3리의 마을 이름. 한국전쟁 때 황해도 장단 출신의 피난민 수용소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
말랭이 : 신대 4리의 우리말 이름.
20. 신호리
  신호(新虎) : 호치 마을과 신촌 마을이 합쳐지면서 두 마을의 명칭 가운데 ‘신'과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새말(新村) : 신호 1리의 마을 이름. 옛날 개펄에서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다.
호치(虎峙) : 신호 2리의 마을 이름. 범치말 또는 범침말이라고도 한다. 범의 고개라는 뜻이다. 예전에 범이 자주 출몰하였거나 고개의 형상이 범과 같아 유래한 듯 하다.
범틔고개 : 범고개라고도 한다. 호치의 우리말 이름이다.
21. 안정리
  안정(安亭) : 안현리(鞍峴里)와 서정자(西亭子) 마을이 합쳐지면서 두 마을 명칭의 ‘안'과 ‘정'을 따서 안정리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鞍'이 ‘安'으로 바뀌었다.
길마재(鞍峴) : 안정 1리-5리-10리의 우리말 이름. 본래 안정 1리 한 마을이었으나 인구가 늘면서 5리와 10리가 다시 나뉘었다. 길마고개라고도 한다. 마을의 형국이 말안장 없이 달아나는 형국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가구점 골목 : 안정 2리의 마을 이름. 가구점이 많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성터말 : 안정 4리의 마을 이름. 예전 성의 흔적이 있던 마을이란 데서 유래했다.
시장통 : 안정 6리의 마을 이름. 안정리 시장이 있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신흥 : 안정 7리의 마을 이름. 마을이 새롭게(新) 흥성(興)하자는 뜻으로 지어진것 같다.
서정자(西亭子) : 안정 8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 마을의 서쪽에 정자가 있던 데서 유래한 듯하다.
일곱집매 : 서정자 마을의 다른 이름으로 7채의 집이 있었던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국민주택 : 안정 12리의 마을 이름. 마을에 국민주택이 지어진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22. 원정리
 
원정(院井) :   ① 고려 때 이곳 탑상골에 있었던 원정사(院井寺)란 곳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온양 방씨 시조가 정착하면서 절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③ 이 마을에 좋은 물이 나는 우물이 있어 그 이름을 마을 명칭으로 하였다고 한다.
마름물 : 원정리의 우리말 이름.
진등 : 원정리의 우리말 이름.
23. 추팔리
  추팔(秋八) :『여지도서』에는 추팔리(楸八里)로 기록되어 있다. 여덟 곳의 마을에서 물이 흘러들어와 매년 풍년을 맞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역말동네 : 추팔 1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 화천역(花川驛)이 있던 곳이다. 역이 있던 마을이라는 뜻이다.
면산 : 추팔 2리의 마을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24. 평궁리
 
평궁(坪宮) : 상평리와 상궁리가 합쳐지면서 두 마을 명칭 가운데 자인 ‘평'과 ‘궁'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상궁리(上宮里) : 평궁 1리의 마을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내월 : 평궁 1리의 우리말 이름. 유래는 알 수 없다. 보통 이런 식의 이름은 안쪽에 있는 마을과 관련된다.
신대(新垈) : 평궁 2리의 마을 이름. 상궁리에서 따로 떨어져 새롭게(新) 터(垈)를 잡고 만들어진 마을이란 뜻.
상평리(上坪里) : 평궁 3리의 마을 이름. 오래된 이름이지만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원상궁리(原上宮里) : 평궁 3리의 다른 이름. 원래 상궁리가 있던 곳으로 병술년 홍수 때 원주민이 떠나고 뒤에 다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25. 함정리
 
함정(咸井) : 함등촌(咸登村) 또는 함정촌(咸灯村)과 경정리가 합쳐지면서 두 마을의 ‘함'자와 ‘정'자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경정리(鯨井里) : 조선시대부터 있던 명칭이다. 커다란 고래(鯨)가 나타났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서원말(書院--) : 함정 1리의 마을 이름. 포의사(褒義祠)라는 사우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말랭이 : 함정 2리의 마을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1. 가곡리
 
가곡(佳谷) : 마을의 산과 골짜기(谷)가 아름다워(佳)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가야실 : 가곡리의 우리말 이름. 가실-계실-개실-계시루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데 모두 같은 말에서 변형된 것이다. 700여년 전에 형성된 마을로 가야실이라는 높은 벼슬을 한 분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
신가곡(新佳谷) : 가곡 1리의 마을 이름. 새로이 형성된 가곡 마을이라는 뜻이다.
바깥가실 : 신가곡의 우리말 이름.
구가곡(舊佳谷) : 가곡 2리의 마을 이름. 본래 있었던 가곡 마을이란 뜻이다.
뒷개실 : 구가곡의 우리말 이름.
신북(新北) : 가곡 3리의 마을 이름. 성북(城北)이라고도 한다. 옛 고구려 부산현의 성-견산리 산성으로 추정-의 뒤 북쪽에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응달말 : 신북마을의 우리말 이름. 응거말이라고도 한다.
후북(後北) : 가곡 4리의 마을 이름.
  ① 고구려 때 쌓은 성터-견산리 산성으로 추정- 뒷편 북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
  ② 가곡리 5개 마을 가운데 북쪽 끝에 있어 유래했다고 하나 정확한 것 같지는 않다.
양지말 : 후북마을의 우리말 이름. 성뒤, 뒷성뒤 등으로도 불린다.
당월(堂月) : 가곡 5리의 마을 이름. 오래된 당집이 있었던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월(月)은 울-올 등과 함께 마을을 뜻하는 우리말 접미사이다. 마을의 우리말 이름이 당너머이므로 넘다는 뜻의 월(越)이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다.
당너머 : 당월마을의 우리말 이름. 당집 산넘어에 마을이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2. 갈곶리
  갈곶(葛串) :   ① 이 마을은 높은 산맥이 뿌리를 내려 길게 뻗어나간 칡덩쿨(葛) 같다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② 오산천변에 위치하여 곶(串)이 형성된 지역이어서 갈곶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나루터가 있었다.
가룻이 : 갈곶리의 우리말 이름. 유래는 자세히 알 수 없다.
3. 견산리
 
견산(見山) : 이 마을에는 고구려 때의 토성이 있었고, 성에 견적대(見敵臺)라는 망루가 있어 사면을 볼 수 있다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불뫼 : 견산리의 우리말 이름. 벌뫼, 벌미라고도 한다. 견산을 우리말로 풀면 볼(見) 뫼(山)가 되는데, 뒤에 조금 바뀌어 만들어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산직(山直) : 견산 2리의 마을 이름. 산지기촌으로도 불렸다. 산성 병졸들의 숙소로 이루어진 마을.
앞거리 : 산직마을의 우리말 이름. 유래는 자세하지 않다.
4. 고현리
  고현(高峴) : 마을에 높은(高) 재(峴)가 있던 데서 유래한 것 같다.
형제마을(兄弟-) : 마산(馬山) 원리 근처에서 살던 형제가 세간을 나와서 형은 높은 재에서 아우는 우촌에서 거주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촌 :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5. 동천리
 
동천(東泉) :  ① 마을에 좋은 샘(泉)이 있고, 동쪽(東)에 물이 마르지 않는 전답이 있어 해마다 풍년이 둘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옛부터 마을 동쪽에 있는 전답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풍년이 든다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동쪽(東)에 있는 전답에는 샘(泉)에서 물이 나와 가뭄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지어진 듯.
동축골 : 동천리의 우리말 이름. 유래는 잘 알 수 없다.
사후동(寺後洞) : 동천 2리의 마을 이름. 절 뒤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신라 때 창건된 만기사(萬奇寺)의 뒷편에 있다.
절뒷골 : 사후동의 우리말 이름.
윗골 : 촌락의 윗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거북골 : 윗골의 다른 이름. 오산쪽에 조성중이던 함평이씨의 묘에 쓰일 묘비를 실은 마차가 아랫말을 지나던 중 묘비가 깨져 그 이유를 살펴보니, 묘소의 지형은 제비형인데 묘비가 깨진 곳은 ‘뱀의 머리 혈(巳(蛇)頭穴)' 이라서 뱀이 먹어치운 형국이라 묘소에 묘비를 세우지 못하고 거북이형의 비대-신도비의 귀부(龜趺)로 추정-만 남아있게 되었고, 그것이 마을의 상징이 되어 거북골이 되었던 것 같다.
아랫말 : 사후동 아랫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사터 : 절터 또는 새로 생긴 새터의 뜻이라고 한다.
비탈말 : 비탈진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6. 마산리
 
마산(馬山) : 조선시대 진위현 마산면 지역이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1914년 북면과 통합되면서 리가 되었다.
오룡동(五龍洞) : 마산 1리의 마을 이름. ① 전하는 바에 의하면, 산이 수려하고 혈자리가 묘한 곳에 무덤이 다섯 기가 있어, 그곳에서 다섯 마리 용이 승천했다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② 전하는 바에 의하면, 커다란 오동나무 밭에서 다섯 마리 용이 나왔다고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오룡굴 : 오룡동의 우리말 이름. 오룡골이라고도 한다. 다섯 마리 용이 승천한 굴이 있다 하여 유래.
수촌(藪村) : 마산 2리의 마을 이름. 주변에 울창한 숲(藪)이 있는 가운데 마을(村)이 있다 하여 유래.
숲안말 : 수촌의 우리말 이름. 숲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
와곡(瓦谷) : 마산 3리의 마을 이름. ① 기와(瓦)를 굽던 골짜기(谷)라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② 고려 때 왕이 행차하다 이곳에 이르니 기와집이 즐비하므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③ 고려 때 왕이 행차하다가 이곳을 지날 때 기와집이 많았으므로 신하에게 물으니, 안와부(安瓦夫)의 집이라고 아뢰었다. 이에 왕은 서인이 99간의 집을 지은것은 신분에 어긋난다고 하여 허물게 되자 이후 집은 폐허가 되었고, 기왓장은 흩어져 있는 숲으로 변해서 기와숲밭이라고 부르고, 와곡터라 했으며 마을 이름도 와곡이 되었다고 한다.
왓골 : 와곡의 우리말 이름. 기와가 나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오얏골 : 와곡의 우리말 이름. 왯골이라고도 한다. 이씨가 많아 오얏이씨의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왯골은 오얏골에서 음운이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내곡(內谷) : 마산 4리의 마을 이름.   ① 골짜기(谷) 안쪽(內)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② 조선시대 사화를 피해 순흥안씨 안효인이 죽산 황새울의 처가에서 피신해 살다가 다시 이곳으로 이사와서 살면서 그의 아들 4형제가 시묘살이 했고 이로부터 마을이 형성되고 안씨 마을이란 뜻에서 안골이 되고 뒤에 그 뜻이 바뀌어 내곡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골 :  내곡의 우리말 이름.
7. 봉남리
  봉남(鳳南) : 무봉산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
읍내골(邑內-) : 고구려 때 부산현이 있었고, 이후 조선시대에 진위현의 관아가, 대한제국기부터 식민지 시기까지 군청이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유래했다.
동부말(東部-) : 봉남 1리의 마을 이름. 읍내의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
옥거리(獄巨里) : 예전에 고을의 옥사가 있던 곳이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위읍지』에는 옥거리(玉巨里)로 되어 있어 확실치 않다.
서부말(西部-) : 봉남 2리의 마을 이름. 읍내의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
서문리(西門里) : 봉남 3리의 마을 이름. 서문이 또는 서문거리라고 한다. 관아 서문 쪽에 있는 마을이었던 데서 유래했다.
아곡리(牙谷里) : 서문리의 다른 이름. 신채나물의 싹(芽)이 많이 나는 곳(谷)이란 의미로 아곡이 되었으나 뒤에 어금니 아(牙)를 쓰는 아곡으로 바뀌었다고 생각된다.
아골 : 아곡리의 우리말 이름.
명당거리(明堂--) : 500여년 전 이선원(李善遠)이라는 선비가 이곳에 정자를 짓고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로서 향교의 명륜당이 유명하여 명(륜)당거리라고 했다고 한다.
8. 신리
  신리(新里) :   ① 벌판에 새로이(新) 형성된 마을(里)이라는 뜻. ② 조선시대에 장호원이 있었다고 한다.
벌말 : 신리의 우리말 이름. 벌판(벌)에 생긴 마을(말)이라는 뜻.
원터거리 :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조선시대 정승 맹사성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9. 야막리
  야막(野幕) : 예전에 유민이 이곳에서 전답을 개간하기 위해 넓은 들판(野) 가운데 막(幕)을 치고 살았다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10. 은산리
  은산(銀山) : 마을에 은을 캐던 은구덩이가 있던 산이라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봉화정씨가 처음 터를 잡을 때 산신령이 나타나 이 산에 머무르라는 계시를 받았고 뒷산이 모두 은으로 변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산대(山垈) : 산(山)에 터(垈)를 잡았다는 뜻이다.
기동(基洞) : 은산 1리의 마을 이름. 산대촌에 처음 기틀(基)을 잡은 마을(洞)이라는 데서 유래.
방촌(傍村) : 은산 2리의 마을 이름. 기동 옆(傍)에 새로이 만들어진 마을(村)이었다는 데서 유래.
미동(米洞) : 은산 3리의 마을 이름. 산대촌에서 가장 쌀(米)이 많이 생산되는 마을(洞)이라는 데서 유래.
미등골(美登-) : 미동의 다른 이름으로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은정골(銀井-) : 은구덩이가 있었다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상리(上里) : 산대 5개촌락 가운데 가장 윗쪽(上) 즉 북쪽에 있는 마을(里)이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말미 : 상리의 우리말 이름. 예전에 마을이 생겨날 때, 지형이 말의 꼬리(尾)에있었다 하여 유래.
월경 : 은산 5리의 마을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11. 청호리
  청호(淸湖) :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청호역(菁好驛)이 있던 곳이라고 하는데, 뒤에 지금의 한자로 바뀐 듯하다. 산과 숲이 우거진 곳에 맑고(淸) 아름다운 호수(湖)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작은 청호 : 이 마을에 있는 호수는 자연적으로 제방이 둘러싸여 있어 봄이면 저수가 잘되어 농사에 유용하게 쓰인다고 한다. 고려시대부터 삼남대로가 옆으로 지나 길손들이 마을 앞을 지날 때 풍치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물이 맑고 깨끗하며 제방은 노송으로 장관을 이루어 잠시 길을 멈추고 쉬어갔다고 한다.
원당(元堂) : 예전에 당이 있던 곳에 마을이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뎅이 : 원당골이라고도 한다. 원당의 우리말 이름으로 원당의 사투리식 발음이다.
12. 하북리
 
하북(下北) :   ① 고구려 때 축성된 (부산현 또는 부성현) 산성의 북쪽 아래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1번 국도와 철도가 놓이면서 생긴 마을로 진위천(河) 북쪽(北)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가 한자가 변화한 것이라고 추정되기도 한다.
성뒤(城-) : 산성 뒤쪽에 있는 마을이란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정촌(大正村) : 하북 3리의 마을 이름. 일본연호로 대정(大正: 1912~1926) 기간에 식민지 토지 수탈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植株式會社)에서 허허벌판이 었던 이곳에 빈농을 투입하여 개간함으로써 주민이 정착되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벌터 : 대정촌의 우리말 이름. 허허벌판의 터전이라는 뜻이다.
새마을촌 : 하북 2리의 마을 이름. 1973년 황해도 피난민들이 새로이 이주하여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1. 금각리
 
금각(金角) : 마을의 지형이 소뿔(牛角)처럼 되어 있다고 하여 쇠뿔이 되고 쇠가 다시 쇠(金)로 바뀌었으며 한자로 표현되면서 금각리가 되었다.
쇠뿌리 : 쇠뿔이라고도 한다. 금각리의 우리말 마을 이름.
용소리(龍沼里) : 용수말이라고 한다. 마을 뒤 샘터 두 곳이 있었는데, 마치 용의 눈과 같다 하여 용의 연못(沼)이라는 마을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농소리(農所里) : 용소가 있던 곳이 농토로 바뀌면서 마을 이름도 농사(農)짓는 곳(所)이라는 뜻으로 변했다고 한다.
상금각(上金角) : 금각 1리의 마을 이름. 윗쪽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금각(下金角) : 금각 2리의 마을 이름. 아랫쪽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2. 금암리
 
금암(金岩) : 마을의 지형이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며, 마을 옆 산에 북바위라는 암석이 있으므로 두 가지 특징을 따서 금암이라 했다고 한다.
골안말 : 금암 1리의 우리말 이름. 골짜기 안쪽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
내리(內里) : 금암 2리의 마을 이름. 마을 가운데 산 마루 안(內)에 있다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안말 : 내리의 우리말 이름.
신리(新里) : 금암 3리의 마을 이름. 오래 전에 청주 한씨가 정착하면서 새로이(新) 생긴 마을(里)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새말 : 신리의 우리말 이름. 새마을이라고도 한다.
3. 내천리
  내천(奈川) : 급한 일로 이곳을 지나던 길손이 마을 서쪽에 있는 황구지천을 건너려다가 물살이 세고 험하자 망연히 서서 “어찌하리오(奈何)”라고 탄식하였으므로, ‘어찌(奈) 개울(川)을 건너리오'라는 뜻으로 내천이라 하였다고 한다.
상내천(上奈川) : 내천 1리의 마을 이름. 촌락의 윗쪽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
웃버드내 : 윗버드내라고도 한다. 상내천의 우리말 이름. 마을에 버드나무가 많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내천(下奈川) : 내천 2리의 마을 이름. 촌락의 아랫쪽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
아래버드내 : 하내천의 우리말 이름.
4. 마무리
 
마두(馬頭) : 서탄면의 전체적인 형상을 보면 이곳이 말의 머리부분에 해당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밖에 금암리는 심장부, 사리는 꼬리, 회화리는 앞발, 적봉리는 뒷발에 해당된다고 한다.
말머리 : 마두 1리의 우리말 이름.
사업소 : 예전에 사업소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나비들 : 마두 2리의 우리말 이름. 나비와 같은 형상을 한 들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장춘동(長春洞) : 마두 2리의 다른 이름.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이 정착하면서 실향을 달래는 심경은, 나비가 오랜(長)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春)을 기다리는 것과 같이 통일과 고향을 그린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5. 사리
  사리(寺里) : 예전에 절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절골 : 사리의 우리말 이름.
6. 수월암리
 
수월암(水月岩) : 전설에 의하면 한 청춘과부가 독수공방으로 기나긴 밤을 지새기 어려워 마음을 달래다가 고아한 달밤에 산밑을 구비쳐 흐르는 냇물에 비치는 달무리에 취하여 읊은 시에 “개울물(水)은 바위(岩)를 구비쳐 흐르는데 둥근 달(月)은 고요하다”라고 하였으며 이것을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원수월암(元水月岩) : 가장 먼저 형성된 마을이다.
거리미 : 수월암 1리의 우리말 이름. 뒷거리미라고도 한다. 원수월암의 우리말 이름이며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도도리(道道里) : 수월암 2리의 마을 이름. 마을 앞뒤로 길이 잘 나있어 길이 많은 곳이라는 뜻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심교리(深橋里) : 수월암 3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는 마을 근처가 모두 야산지대이며 잡목이 무성하고 개울이 있어 건너 다니기에 매우 불편하였는데, 한 부인이 큰돌을 안아다 띄엄다리(橋)를 만들어 깊은(深) 물을 건넜다 하여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깊은다리 : 심교리의 우리말 이름.
7. 장등리
  장등(長登) : 예전에 큰 홍수가 있을 때 황구지 일대의 사람들이 물난리를 피하여 이곳 긴 능선지대로 옮겨 왔다가 정착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장등(元長登) : 장등 1리의 마을 이름. 장등리 가운데 가장 먼저 생겨났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진등이 : 원장등의 우리말 이름. 장등리에서 변화된 사투리라고 생각된다.
구억리(九億里) : 장등 2리의 마을 이름. 구덕리(九德里)라고도 한다. 옛날 큰 부자가 아홉가지 덕(九德)을 쌓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은행댕이 : 구억리의 다른 이름. 마을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 데서 유래한 것같다.
8. 적봉리
  적봉(赤峰) : 마을 산봉우리의 흙이 황토색이며 산에 나무가 나지 않아 적봉리라고 했다.
원적봉 : 현재는 서정동에 편입되어 16통이 되었다.
신야리 : 들(野) 한 가운데 새로운(新) 마을이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벌해쟁이 : 벌판에 서해의 조수가 강을 따라 들어왔다가 나가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9. 황구지리
  황구지(黃口池) :   ① 진위천과 오산천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하였으며 예전에 항곶포(亢串浦)가 있었는데, 항곶이 또는 항고지가 되며 뒤에 음운이 변화하면서 황구지로 바뀌었다고 생각된다.   ② 홍수 때면 누런 흙탕물로 땅도 누렇게 된다하며 습지에다 물결에 패인 웅덩이가 곳곳에 있어 누런(黃) 물색을 띤 하구(河口)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0. 회화리
  회화(檜花) : 마을에 회화나무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해쟁이(海停里) : 예전에 이곳 앞까지 바닷물(海)이 들어와 머물다(停) 간다 하여 해정(海停)이라 하였는데 뒤에 해쟁이로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금나들 : 소금배가 드나들었고 해산물로 교역하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수풀해쟁이 : 해쟁이 마을 가운데 수풀이 유난히 많았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1. 궁리
 
궁리(宮里) : 마을에 궁전 같은 큰 집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궁안리(宮安里) : 궁 1리의 마을 이름. 궁리와 오성면 안화리(安化里)의 중간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다루지 : 궁 1리의 자연이름. 옛날에 진위천에 다라고비진이 있었기 때문에 생겨났다.
건곤리(乾坤里) : 궁 2리의 마을 이름. 건군리라고도 한다.   ① 하늘(乾)과 땅(坤)은 영원한 절대 존재로서 이와 같이 영원한 번영을 바라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② 300여년 전 마을이 생긴 포구 어촌으로 노적도(露積島)라고 했던 바와 같이 섬이었으므로 먹을 물이 귀한 곳이라 해서 지어졌다고도 한다.
복음촌(福音村) : 궁 3리의 마을 이름. 해방 이후 이북 피난민의 이주로 형성되었는데, 거주민의 상당수가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중촌(中村) : 마을의 한 가운데 있다는 데서 유래한 것 같다.
2. 당현리
 
당현(堂峴) :   ① 고려시대 말부터 마을 뒷산에 성황당이 있어 당고개(堂峴) 또는 당밑-당아래의 뜻-으로 불리었다. 얼마전까지 당의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② 예전에 고개(峴) 너머에 서당(堂)이 있어서 ‘글당이'라고도 한다.
원당현(元堂峴) : 당현 1리의 마을 이름. 당현리 가운데 가장 먼저 형성된 데서 유래했다.
막금리(幕錦里) : 당현 2-4리의 마을 이름. 마을의 주변 산이 비단(錦)같이 아름답게 병풍처럼 펼쳐져 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상막금(上幕今) : 당현 2리의 마을 이름. 막금리의 윗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하막금(下幕今) : 당현 4리의 마을 이름. 막금리의 아랫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내촌(內村) : 당현 3리의 마을 이름. 상막금의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산위에 당집이 있어 음력 7월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청룡말 : 청룡사라는 절이 있어서 생겨난 이름이다. 덕원군의 묘가 있다.
3. 동고리
  동고(東古) : 고덕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자동(亭子洞) : 동고 1리의 마을 이름. 정자말이라고도 한다. 마을에 정자나무인 큰 홰나무가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동고(元東古) : 동고 2리의 마을 이름. 동고리 가운데 가장 먼저 형성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뎅구리 :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동고리의 사투리식 어투라고 생각된다.
4. 동청리
 
동청(東淸) : 동쪽(東)에 맑은 물(淸)이 흐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동챙이 : 동청리의 사투리식 어투라고 생각된다.
가산동(佳山洞) : 동청 1리의 마을 이름. 우리말로는 개미라고 한다. 뒷동산이 개미허리 같이 생긴데서 유래했다고 하며 가산은 가뫼의 뜻으로 개미를 한자화한 표기이다.
원동청(元東淸) : 동청 2리의 마을 이름.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가래동챙이 : 원동청의 우리말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동안리(東安里) : 동청 3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 안씨가 정착하였으며 마을이 동쪽을 향하여 각 집의 대문도 동쪽으로 내어야 했다는 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구동안(舊東安) : 동청 3리의 다른 이름.
5. 두릉리
 
두릉(杜陵) : ① 지리적으로 마을 앞에 큰 두릉축이 있었다 하여 지어졌다고 한다. ② 마을 앞의 언덕(陵)이 울창한 숲으로 막혀(杜)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두렁이 : 두릉리의 사투리식 어투로 생각된다.
원두릉(元杜陵) : 두릉 1리의 마을 이름.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계루지(桂樓地) 두릉 2리의 마을 이름. 큰 계수나무(桂) 정자가 마치 누각처럼 있다는 데서 유래.
6. 문곡리
 
문곡(文谷) : 예전에 글을 좋아하고 학식있는 문사(文士)들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황새울(黃鳥谷) : 문곡 1리의 마을 이름. 황조곡은 황새울의 한자식 표기이다. ① 마을 지형이 황새와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예전부터 황새-왜가리 등이 많이 살았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문곡(元文谷) : 문곡 2리의 마을 이름.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민곳 : 원문곡의 우리말 이름. 문곡의 사투리식 발음이라고 생각된다.
구렁머리 : 원문곡의 우리말 이름. 마을 뒷산의 지형이 아홉 마리 용의 형상이어서 구룡머리라고 하였으나 뒤에 음이 변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문신기(文新基) : 문곡 3리의 마을 이름. 조선말 경주이씨가 동청리 황참봉의 괄세를 받고 이사하여 정착한 곳으로 문곡리(文)의 새로운(新) 터(基)라는 뜻이다.
새터 : 문곡 3리의 우리말 이름.
신흥동(新興洞) : 문곡 4리의 마을 이름. 정착사업장이라고도 한다. 이북 피난민들이 정착하여 생긴 마을이다. 신흥이란 새로이 이주한 사람들이 새롭게 흥한다는 뜻으로 집단 이주 지역에 많이 나타나는 이름이다.
7. 방축리
 
방축(防築) : 예전에 방죽 즉 물을 막는(防) 축대(築)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효학동(孝學洞) : 방축 1리의 마을 이름. 옛부터 효행을 중요시 여기고 효(孝)를 가르쳐(學) 예풍(禮風)을 일으킨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새악들 : 방축 1리의 우리말 이름. 마을이 효를 가르치매 딸들에게도 게으르지 않아서 새악씨-새아씨-를 가르친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방축(元防築) : 방축 2리의 마을 이름.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방축안(防築-) : 방축리의 안마을이라는 뜻이다.
소시동(蘇侍洞) :
  ① 고려말 시랑을 지낸 소씨가 이곳에 와서 정착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시랑이란 벼슬과 무관하게 소씨(蘇侍) 마을(洞)이란 뜻이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활딱지 : 예전에 이곳까지 물이 들어와 갯벌이 만들어져 활연습장으로 이용되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마을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신환포(新換浦)가 있었다고 한다.
8. 여염리
 
여염(余染) : 여씨(余氏)가 처음 살면서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성두(城頭) : 여염 1리의 마을 이름. 마을 주변의 산이 마치 성같이 둘러싸여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예전에 광주(廣州)에서 이주한 김씨들이 공(孔)-봉(奉)씨와 더불어 의형제를 맺고 도적떼들을 막기 위해 토성을 굳게 쌓아 태평하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성머리 : 여염 1리의 우리말 이름.
임주(任珠) : 여염 2리의 마을 이름. 마을 뒷산의 형세가 용이 구슬(珠)을 희롱하는 형상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9. 율포리
 
율포(栗浦) : 예전 양성현에 속하였고 황구지천에 인접한 포구(浦)로서 주변에 밤(栗)이 많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동촌(東村) : 율포 1리의 마을 이름.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방죽말 : 율포 1리의 우리말 이름. 마을에 방죽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중촌(中村) : 율포 2리의 마을의 한 가운데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방개울 : 중촌의 우리말 이름.
강촌(姜村) : 율포 3리의 마을 이름. 해방 이후 강씨들이 이주해 많이 살았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월동(梨月洞) : 율포 3리의 다른 이름. 강촌이 깡촌으로 발음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율포리가 나뉘면서 배꽃이 아름답다고 하여 이화동(梨花洞)이라고 하였고, 달빛에 비치는 배꽃을 뜻하는 이월동이라고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화동(梨花洞) : 율포 3리의 다른 이름.
10. 좌교리
 
좌교(坐橋) : 마을 앞 얕은 개울에 앉은(坐) 다리(橋)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좌교(元坐橋) : 좌교 1리의 마을 이름.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좌월리(坐月里) : 우리말 이름인 앉은(坐) 달(月) 말(里)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 옹정(瓮井) : 좌교 2리의 마을 이름.
  ① 독(瓮)에 부어놓은 물같이 잘 마르지 않고 샘(井)솟는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조선 중엽에 세 가구가 이주하면서 우물(井)에 항아리(瓮)를 묻고 물을 길어 먹었던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독우물 : 좌교 1리의 다른 이름. 옹정의 우리말 표현이다.
도구머리(逃龜-) : 옹정의 우리말 이름.
  ① 단순히 독우물에서 음운적으로 변화한 것 같다.
  ② 마을의 형세가 거북이(龜)가 도망(逃)가다 진흙에 빠진 머리와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중앙동(中央洞) : 좌교 4리의 마을 이름. 고덕면의 한 가운데 중앙에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면실마을 : 좌교 4리의 우리말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면사무소가 있는곳이라는 뜻으로 생각된다.
좌신기(坐新基) : 좌교 3리의 마을 이름. 1922년 임술년 대홍수로 해창리 염촌 마을 사람들이 새로이(新) 터(基)를 잡고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데서 ‘좌교 신기'라고 하였다가 줄여서 좌신기가 되었다고 한다.
11. 해창리
 
해창(海倉) : 예전에 이곳은 바다(海)에 인접하였으며 주변 지역의 조세를 모아 보관하다가 서울로 조운(漕運)하기 위한 창고(倉)가 있었다.
염촌(廉村) : 해창 1리의 마을 이름. 염씨네가 처음 정착하여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마분리(馬墳里) : 해창 2리의 마을 이름.
  ① 조선시대 정승을 지낸 마씨(馬) 성을 가진 분의 무덤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예전부터 병마(兵馬)의 무덤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원해창(元海倉) : 해창 3리의 마을 이름. 해창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데서 유래했다.
신촌(新村) : 해창 4리의 마을 이름. 원해창에서 새로이(新) 형성된 마을(村)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방시천(芳是川) : 해창 5리의 마을 이름. 방시촌(芳是村)이라고도 한다. 앞에는 내(川)가 흐르고, 뒤에는 아름다운(芳) 산이 둘러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방시내 : 방시천의 우리말 이름.
대창동(大昌洞) : 해창 6리의 마을 이름. 대창리(大倉里)라고도 한다.
  ①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크게(大) 번창(昌)하라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② 해창과 관련하여 마을 부근에 큰(大) 창고(倉)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 것 같다.
고척골 : 대창동의 우리말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1. 교포리
 
 
교포(橋浦) : 예전의 갯가 마을로 포구(浦)가 있었으며, 지대가 낮아 바닷물이 많이 들어 작은 쪽다리(橋)를 놓고 통행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교포(元橋浦) : 교포 1리의 마을 이름. 교포리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다리께 : 원교포의 우리말 이름. 다리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송호(松湖) : 교포 2리의 마을 이름. 호수(湖)가 사시사철 소나무(松)와 같이 푸르다는 뜻에서 유래.
궁말 : 송호의 우리말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월량촌(越梁村) : 교포 3리의 마을 이름. 교포와 유사한 유래이다. 즉 낮은 지대가 많아 이 마을에 가려면 징검다리(梁)를 건너야(越) 하는 마을(村)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똘건너 : 월양의 우리말 이름. 마을이 작은 개울 건너 편에 있는 데서 유래한 것 같다.
2. 길음리
 
길음(吉音) : 뒷산에서 이상한 소리(音)가 나면 마을에 좋은(吉) 일이 생기므로, 그 소리를 고대하면서 ‘길음'이라고 마을 이름을 정하였다고 한다.
원길음(元吉音) : 길음 1리의 마을 이름. 길음리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
계음(鷄音) : 마을의 형상이 닭(鷄)을 닮았고, 길음리(音)의 한 마을이므로 ‘계음'이라고 한 것 같다. 이 지명이 식민지 시대에 원길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내탑(內塔) : 길음 2리의 마을 이름. 탑(塔) 안(內) 동네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안탑골 : 내탑의 우리말 이름.
미촌(美村) : 길음 3리의 마을 이름. 바다와 산이 조화를 이룬 경치 좋은 아름다운(美) 마을(村)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미삐 : 미촌의 우리말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밑빠진 독이란 뜻이라고도 한다.
양성말(陽城-) : 예전에 양성현에 속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3. 당거리
 
당거리(堂巨里) :   ① 예전에 이 마을에는 큰(巨) 집(堂)을 짓고 부유하게 사는 사람이 많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보통 이런 마을 이름은 성황당이나 당집이 있는 큰 거리에 붙여지는 경우가 많다.
탑현(塔峴) : 당거 1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 고개(峴) 넘어 절과 탑(塔)이 있었고 탑신령이란 무당이 살았는데, 탑과 고개를 따서 탑고개라고 했다고 한다.
원당거(元堂巨) : 당거 2리의 마을 이름. 당거리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당집이 있으며, 그 앞에는 현덕면 주민들이 평택에 왕래하는 큰 길목이 있다. 조선말 큰 당집이 있었고 매년 제사를 성대히 지냈다고 한다.
길마원(吉馬院) : 당거 3리의 마을 이름. 길마원이란 이름을 지으면 동네가 길하다고 하여 지었다고 한다.
길마지 : 길마원의 우리말 이름. 예전 마을 사람들이 간척사업을 할 때 소에다 길마를 지워 흙을 운반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4. 숙성리
 
숙성(宿城) : 마을의 형세가 자던 새가 수풀을 나서는 모양(宿鳥出林型)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숙성(元宿城) : 숙성 1리의 마을 이름. 숙성리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조두(大潮頭) : 숙성 2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 바닷물이 들던 곳으로 큰(大)조(潮)머리(頭)라고 하였고 그것을 한자로 바꾼 것이다.
큰조머리 : 대조두의 우리말 이름.
소조두(小潮頭) : 숙성 3리의 마을 이름. 대조두보다 아래에 있어 조수의 양이 적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소조머리 : 소조두의 우리말 이름.
숙신대(宿新垈) : 숙성 5리의 마을 이름. 숙성리(宿)에서 새로이(新) 터(垈)를 잡고 생겨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한 것 같다.
5. 신리
 
신리(新里) : 조수간만의 차이에 의해 생긴 터에 새로이(新) 생긴 동네(里)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삼궁원(三宮院) : 신 1리의 마을 이름. 옛적에 큰 집 세(三) 채가 있어 마치 궁원(宮院 : 임금이나 왕자-공주 등이 사는 곳)같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주교포(舟橋浦) : 삼궁원의 다른 이름. 예전에 배다리(舟橋)와 함께 포구(浦)가 있었던 데서 유래.
신대(新垈) : 신 2리의 마을 이름. 신리 가운데에서도 다시 새로운(新) 터(基)를 잡아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새터 : 신대의 우리말 이름.
중대(中垈) : 신 4리의 마을 이름. 원창 마을과 삼동촌의 가운데(中) 터(垈)를 잡고 마을이 형성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삼동촌(三洞村) : 신 3리의 마을 이름. 처음에 세 가구(三)가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洞村)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6. 안화리
 
안화(安化) : 예전에 바닷가 마을로서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며 산턱이 씻겨 무너져 내려와 흙이 쌓이면서 마을의 터가 이루어졌는데, 처음 안씨네가 정착하여 살면서 안씨네(安)가 흥성(化)하자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원안화(元安化) : 안화 1리의 마을 이름. 안화리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다내(雨多-) : 원안화의 우리말 이름. 비(雨)가 많이(多) 와서 홍수가 잦은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송대(松垈) : 안화 2리의 마을 이름. 소나무(松)가 우거진 숲에 터(垈)를 잡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7. 양교리
 
양교(梁橋) : 이 마을은 지대가 낮아 사방으로 나무로 만든 징검다리(梁橋)를 놓고 건너 다녔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양교(元梁橋) : 양교 1리의 마을 이름. 양교리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양다리 : 양교리의 우리말 이름.
고렴(古念) : 양교 2리의 마을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삼태평 : 고렴의 우리말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태끌이 : 고렴의 우리말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대각뿌리 : 고렴의 우리말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구래미 : 고렴의 우리말 이름. 고렴의 사투리식 변화가 아닌가 한다.
신흥동(新興洞): 양교 3리의 마을 이름. 마을이 형성되면서 새롭게(新) 흥성(興)하자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분가촌(分家村) : 다른 곳에서 분가(分家)하여 이루어진 마을(村)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큰말 : 큰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많았고 권문세도가와 예절을 숭상하는 문장가들이 살았으며 사람들이 부유해 노복(奴僕)에까지 기와집을 지어줬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겸당(大兼堂): 양교 4리의 마을 이름. 큰말의 한자식 이름. 집의 종조차도 겸(兼)하여 큰 집(大堂)에서 살았다는 데서 유래한 것 같다.
여수(麗水) : 양교 5리의 마을 이름. 샘물(水)이 맑고 수려(麗)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여술(汝術) : 여수리의 음운상 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문장자고개 : 예전 한 스님이 시주를 청하자, 문장자(文長者)는 “우리집에 손님이 너무 많이 찾아와 피곤하다”고 (박대) 하였더니, 스님은 “새터 앞의 산허리를 끊고 내를 방울미 앞으로 돌리면 지나가는 손님이 뜸할 것이라 일러주었다. 이에 문장자가 대사의 말대로 실행하였는데, 곧 집안이 망했다고 하여 이 고개를 ‘문장자고개'라고 하였다고 한다.
신기(新基) : 양교 5리의 마을 이름. 새로이(新) 터(基)를 잡고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8. 죽리
  죽리(竹里) : 예전 이 마을에 대나무숲(竹)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방울(防菀) : 죽 1리의 마을 이름. 마을 산이 매의 방울이 달린 자리에 동네가 위치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마을이 번성하기 위해서는 방울 소리가 나야 한다며 사람들이 소원풀이로 장고와 북, 꽹과리 등을 자주 쳤다고 한다.
소겸당(小兼堂) : 방울의 한자식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양교리의 대겸당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소죽(小竹) : 죽 4리의 마을 이름.   ① 작은(小) 대나무(竹) 마을이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죽리(竹)에서 작은(小)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한 것 같다.
기능골 : 봉이 춤추는 듯한 고개까지 긴 능선 마을이라는 데서 긴능골이 되었다가 기능골로 바뀌었다고 생각된다.
즘말 :   ① 즘말이라는 질그릇을 생산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질그릇을 만드는 곳, 즉 질말에서 짐말, 즘말의 변화과정을 거친 것이 아닌가 한다.
대죽(大竹) : 죽 3리의 마을 이름. 죽리(竹)의 큰(大) 마을이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댓골 : 대죽의 우리말 이름. 대나무골이라고도 한다. 모두 대나무가 많이 나는 고을이란 뜻이다.
신죽(新竹) : 죽 2리의 마을 이름. 죽리(竹)에서 새로이(新)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유래했다고 한다.
곰뱅이 : 신죽의 우리말 이름. 고군뱅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곰이 살았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소골 : 죽 5리의 마을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9. 창내리
  창내(倉內) : 흙을 파서 둑을 쌓은 형태를 창이라 하는데, 이후 이곳의 안쪽에 마을이 생겨났으므로 창(倉)의 안쪽(內)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본래 버들과 갈대가 무성한 곳에 갯벌 굴착공사를 해서 생긴 마을이다.
원창(元倉) : 창내 1리의 마을 이름. 창내리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창안말 : 원창의 우리말 이름.
구창(舊倉) : 창내 2리의 마을 이름. 원창 마을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이 마을이 만들어졌는데, 원창 마을 사람들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창(新倉) : 창내 3리의 마을 이름. 가장 뒤늦게 새로이 만들어진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동창(東倉) : 창내 4리의 마을 이름. 마을의 동쪽에 있다는 데서 유래한 것 같다.


  1. 고렴리
 
고렴(古念) : 예전 이곳에는 감미면(甘味面) 사무소가 있었던 곳으로,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면사무소가 이전하게 되자 면사무소가 있었던 옛(古)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念)하겠다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개미골 : 고렴 1리의 마을 이름. 마을 사람들이 개미처럼 부지런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늘언 : 고렴 2리의 마을 이름. 자세한 유래를 알 수 없다.
고란평(古蘭坪) : 고렴 3리의 마을 이름.
  ① 옛날부터 고란(皐蘭)이 많이 난다는 데서 유래했는데 행정리가 나뉘면서 고(皐)자를 알기 쉬운 고(古)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② 예전에 이곳 출신 가운데 고을의 원님을 많이 낳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2. 고잔리
 
고잔(高棧) :   ① 마을이 해안과 접하여 갯고랑의 높은(高) 잔다리(棧)를 건너다닌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고려시대 서울에서 벼슬하던 한 양반이 낙향하여 이곳에 머물면서 왕이 계시던 서울을 못잊어 높은 곳에 올라가 서울을 바라보며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후평(後坪) : 고잔 1리의 마을 이름. 마을 뒷편(後)의 들(坪)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뒷들 : 후평의 우리말 이름.
전평(前坪) : 고잔 2리의 마을 이름. 마을 앞편(前)의 들(坪)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고잔(元高棧) : 고잔 3리의 마을 이름. 고잔에서 가장 먼저 생겨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도마지 : 원고잔의 다른 이름. 고령신씨가 도망쳐 숨어 살았으므로 ‘도망지'라 하다가 도마지로 변화했다고 한다. 이곳에 신숙주(申叔舟)의 사당이 있다.
원목(原木) : 고잔 4리의 마을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대곡(大谷) : 고잔 5리의 마을 이름. 마을이 큰(大) 골짜기(谷)에 위치하였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큰골 : 대곡의 우리말 이름
서대곡(西大谷) : 고잔 8리의 마을 이름. 대곡의 서쪽에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
서대울 : 서대곡의 우리말 이름. 서쪽 큰 골짜기에 있다는 서대골에서 서대울로 변화한 것 같다.
중평(中坪) : 전평(前坪)과 중평(中坪)의 가운데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농곡(農谷) : 농사짓는(農) 골짜기(谷) 또는 마을이란 데서 유래한 것 같다.
논골 : 농곡의 우리말 이름. 마을에 논이 많다는 데서 유래한 것 같다.
혁명촌(革命村) : 고잔 6리의 마을 이름. 이북 피난민들이 정착해서 간석지를 개간해 살던 곳으로 5-16 쿠데타 이후 자연부락으로 독립하였는데, 예전에는 5-16쿠데타를 혁명이라고 하였으므로 혁명(革命) 이후 생긴 마을(村)이라는 뜻에서 유래한것 같다.
청룡(靑龍) : 고잔 7리의 마을 이름. 대청댐 수몰 지역민들이 이주한 곳으로 옛 고장인 충청도의 ‘청'과 ‘용'의 기운으로 마을이 번성하라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3. 백봉리
  백봉(栢峰) : 옛날 이곳에는 잣나무(栢) 숲이 울창한 봉우리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백봉(元栢峰) : 백봉 1리의 마을 이름. 백봉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데서 유래했다.
벽동(璧洞) : 백봉 2리의 마을 이름. 마을의 형상이 구슬(璧)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구슬 : 벽동의 우리말 이름.
4. 삼계리
 
삼계(三溪) : 지리적으로 세(三) 갈래의 계곡(溪)에서 흐르던 물이 이 마을에서 만나 합쳐져 서해로 흐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삼계(元三溪) : 삼계 1리의 마을 이름.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옹포(瓮浦) : 삼계 2리의 마을 이름.   ① 1910년 이전에는 양성현에 속했으며 마을 앞에는 배가 드나드는 포구(浦)가 있었고 옹기(瓮)로 만든 새우젖 독을 매매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포구(浦)의 모양이 항아리(瓮)와 같이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독개 : 옹포의 우리말 이름. 새우젖 독을 파는 바닷가(개)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같다.
신촌(新村) : 삼계 3리의 우리말 이름. 1882년경 마을이 생기면서 본말로 부르다가 1939년 원삼계 마을과 나뉘면서 새로이(新) 형성된 마을(村)이란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새말 : 신촌의 우리말 이름. 새로이 생긴 마을이란 뜻에서 유래했다.
분말 : 신촌의 우리말 이름. 마을에서 나뉘어져(分) 나온 마을이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월곡(月谷) : 삼계 4리의 마을 이름. 마을 산의 골짜기(谷)에 비친 달(月)이 아름답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달마골 : 월곡의 우리말 이름. 자세한 유래를 알 수 없으나 달맞이와 관련된 듯 하다.
윗삼계 : 월곡의 다른 이름. 삼계 마을의 윗쪽에 있는 데서 유래한 것 같다.
신영촌(新榮村) : 삼계 5리의 마을 이름. 해방후 이북 피난민이 정착하여 생긴 마을로 새롭게(新) 번영(榮)하는 마을(村)이 되자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성곡(城谷) : 마을이 성둘레(城)의 골짜기(谷)에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성골 : 성곡의 우리말 이름.
5. 어소리
  어소(魚沼) : 예전에 연못(沼)이 있었고 이곳에서 물고기(魚)를 길렀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어소(元魚沼) : 어소 1리의 마을 이름. 어소리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의시리 : 원어소의 우리말 이름. 어소리의 사투리식 발음이 변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구억(九億) : 어소 2리의 마을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설창(設倉) : 예전에 창고(倉)가 설치(設)되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구설창리 : 설창의 다른 이름.
6. 어연리
 
어연(魚淵) : 마을 앞에 큰 연못(淵)이 있었으며 그곳에는 각종 물고기(魚)들이 많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어연(元魚淵) : 어연 1리의 마을 이름. 어연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황곡(黃谷) : 어연 2리의 마을 이름. 이 마을은 냇가나 샘도 없는 천수답(天水畓)이 많았으므로 이 골짜기(谷) 들판의 모든 곡식이 메말라 누렇게(黃) 보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가뭄을 표현하는 뜻에서 지은 마을 이름이다.
7. 옥길리
 
옥길(玉吉) : 예전 이 마을 사람들이 조개잡이를 하여 생계를 이어왔는데, 조개껍질이 다양하게 아름다워 마치 옥(玉)과 같았고, 마을 사람들이 길하게 잘 살자는 뜻에서 옥길리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원옥길(元玉吉) : 옥길 1리의 마을 이름. 옥길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가사(佳士) : 옥길 2리의 마을 이름. 바닷가에 모래가 아름답고(佳) 마을에 선비(士)가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개사리 : 가사리의 다른 이름. 가사리의 사투리식 발음으로 생각된다.
기산(基山) : 옥길 3리의 마을 이름. 자세한 유래를 알 수 없으나 무성산에 터를 잡았다는 사실과 관련된다고 한다.
퇴미 : 기산의 우리말 이름. 무성산을 우리말로 퇴미라 했다고 한다.
신기(新基) : 옥길 4리의 마을 이름. 새로운(新) 터(基)에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새터 : 신기의 우리말 이름.
8. 율북리
 
율북(栗北) : 마을에 밤나무(栗)가 울창하여 밤이 많이 났으며, 청북면의 북쪽(北)에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율북(元栗北) : 율북 1리의 마을 이름. 율북 마을에서 가장 먼저 생긴 데서 유래했다.
밤뒤 : 원율북의 우리말 이름.
내촌(內村): 율북 2리의 마을 이름. 마을(村) 안쪽(內)에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상가천리(上佳川里) : 예전 내촌에 있던 마을로서 잦은 홍수로 인해 없어졌다고 한다.
장계동(長桂洞): 율북 3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 길고(長) 높은 계수나무(桂)가 있어 달빛 속에 비친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상현리(桑峴里) : 율북 4리의 마을 이름. 마을 모퉁이에 고개가 있고 그 옆에는 밭이 있어 뽕나무(桑) 고개(峴)란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불정(佛井) : 율북 5리의 마을 이름.   ① 예전에 어느 풍수쟁이가 이곳에 부처님을 모신 절(佛)을 짓고 정결한 우물(井)을 파놓으면 마을에 복과 덕이 있을 것이라는 말에 따라 마을사람들이 합심하여 실천하였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신라시대 지나가던 스님(佛)이 이곳의 우물물(井)을 마시고 잔병도 없이 오래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부처말 : 불정리의 우리말 이름. 부처님이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9. 토진리
 
토진(土津) : 예전에 이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고 나루터가 있어 길손들이 왕래했으며 그 나루터 이름이 톳(土)나루(津)였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토진(元土津) : 토진 1리의 마을 이름. 토진리 가운데 가장 먼저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톳나루 : 토진의 우리말 이름.
고좌(高座) : 토진 2리의 마을 이름.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집이 앉는 자리(座)를 높게(高) 해야한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국길리(國吉里) : 토진 3리의 마을 이름. 나라(國)가 좋은 일(吉)이 있어야 마을도 편안해 진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귀락 : 국길리의 우리말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10. 한산리
 
한산(閑山) : 처음에는 한미한 곳이라하여 한미라고 하다가 식민지 시대부터 갯가의 한미한(閑) 산턱(山)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한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원한산(元閑山) : 한산 1리의 마을 이름. 한산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수부리(壽富里) : 한산 2리의 마을 이름.
  ① 숫뿌리라는 마을 이름을 한자로 옮긴 것 같다.
  ② 마을 사람들이 장수하고 부유해지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망포(網浦) : 한산 3리의 마을 이름. 한자 어의상으로는 그물(網)이 있는 포구(浦)라는 뜻이다.
망개울 : 망포와 같은 마을. 망개울이란 갯가의 이름을 마을 명칭으로 삼았다고 한다.
방죽거리 : 망포와 같은 마을. 마을에 방죽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판교(板橋) : 예전에 한양가는 국도와 같은 큰 길목으로 마을 입구 앞에 갯고랑을 지르는 널판쪽(板) 다리(橋)를 가설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널다리 : 판교의 우리말 이름. 나무 널로 만든 다리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 이곳에는 예전부터 큰 장이 서서, 널다리 장터라 했다고 한다.
11. 현곡리
 
현곡(玄谷) : 한자상의 뜻은 깊은 골짜기인데,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원현곡(元玄谷) : 현곡 1리의 마을 이름. 현곡리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가마을 : 원현곡의 우리말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검은(玄) 골(谷)에서 음운상 변화된 것이 아닌가 한다.
신포(新浦) : 현곡 2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곳으로 포구가 작아 새로(新) 만든 포구(浦)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광승(光升) : 현곡 3리의 마을 이름. 마을 뒷산이 큰 성채(城砦)와 같다 하여 광성(廣城)이라 했다가 뒤에 광승으로 변화했다고 한다.
건의(乾宜) : 현곡 4리의 마을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12. 후사리
  후사(後寺) : 예전에 큰 절이 있었으며 신도가 많아지면서 절(寺) 뒤(後)에 마을이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후사(元後寺) : 후사 1리의 마을 이름. 후사리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금(梧金) : 후사 2리의 마을 이름.   ① 옛날부터 금이 많이 나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조선시대 이 마을에는 오동나무(梧)를 많이 심고 이 나무로 거문고(琴:金으로 변화)를 만들어 팔아 생업을 삼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무릉(武陵) : 옛적에 무사들이 무술(武) 연습을 하던 곳이며 또한 능(陵)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1. 내기리
 
내기(內基) : 예전에 함평이씨 이중길(李仲吉)이란 학자가 개성에서 이주해와 이곳 안(內) 터(基) 마을에 정착하였으며, 뒤에 안쪽 마을이란 뜻의 안터가 한자식으로 표기되면서 내기리가 되었다고 한다.
안기(安基) : 포승 1리의 마을 이름. 마을이 참으로 편안한(安) 터(基)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승학동(乘鶴洞) : 포승 2리의 마을 이름. 풍수상 마을의 형상이 두 날개를 활짝편 학(鶴)을 탄(乘) 것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송학동(松鶴洞): 승학동의 다른 이름.
정문동(旌門洞) : 포승 3리의 마을 이름. 함평이씨의 정려문(旌門)이 세워진 마을(洞)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대(新垈) : 새로이(新) 터(垈)를 잡고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잔(高棧): 신대의 다른 이름.
재촌(齋村) : 포승 4리의 마을 이름. 재촌(災村)이라고도 한다. 마을 뒤에 있는 숭배산(崇拜山)에 불교식 의례인 재(齋)를 올렸다는 데서 재(齋)를 지내는 마을(村)이 유래했다고 한다.
잿말 : 재촌의 우리말 이름.
이촌(裡村) : 마을(村)이 깊숙한 속(裡)에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씨촌(李氏村) : 이씨(李氏)가 많이 사는 마을(村)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2. 도곡리
 
도곡(道谷) : 마을 앞 불당산(佛堂山)에 절이 있었고, 그곳의 승려들이 수도하였기 때문에 도를 닦는 골짜기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도틀이 : 도곡의 우리말 이름. 되틀이라고도 한다.
거산(巨山) : 도곡 1리의 마을 이름.
  ① 마을에 큰(巨) 산(山)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마을 뒷산의 모양이 궤가 엎드린 것과 같다는 데서 궤산이라고 하다가 거산 또는 거뫼라고 변화했다고 한다.
거뫼(巨-) : 거산의 우리말 이름.
진목동(眞木洞) : 도곡 2리의 마을 이름. 주변에 참(眞)나무(木)가 많은 마을(洞)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참나무말 : 진목동의 우리말 이름. 진나무말이라고도 한다.
당두(堂頭) : 도곡 3리의 마을 이름. 당집(堂)이 마을 어귀(頭)에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머리 : 당두리의 우리말 이름.
원도곡(元道谷): 도곡 4리의 마을 이름. 도곡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되틀이 : 마을 사람들이 가난하여 날품팔이로 근근이 살아가며 그날 그날 쌀이나 보리를 되(升)로 팔아 연명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무수(無愁) : 도곡 5리의 마을 이름. 조선 초기 최씨의 선조 최성윤(崔聖胤)이 조정에서 벼슬하라는 권유도 사양하고 이곳에서 살기 시작하였는데, 근심(愁) 없이(無) 살기 좋은 곳이란 데서 자신의 아호인 무수옹(無愁翁)을 따서 무수리라고 하였다고 한다.
3. 만호리
 
만호(晩湖) : 예전에 만포(晩浦)라는 포구가 있었으며 호서(湖) 지방인 충청도와 바다를 두고 맞닿아 있어 두 글자를 합하여 지었다고 한다.
상만호(上晩湖) : 만호 1리의 마을 이름. 만호리 가운데 윗쪽에 있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윗느지 : 상만호의 우리말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큰말 : 상만호의 다른 이름. 만호리 가운데 가장 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만호(下晩湖) : 만호 2리의 마을 이름. 만호리 가운데 아랫쪽에 있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랫느지 : 하만호의 우리말 이름. - 대정(大井) : 만호 3리의 마을 이름. 마을에 큰(大) 우물(井)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기(院基) : 만호 4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 나라에서 역(驛)과 역 사이의 교통로에 설치하여 출장 관원(官員)을 유숙하게 둔 원(院)이 있던 터(基)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터(院-) : 원기리의 우리말 이름.
원막(院幕) : 원이 있던 막사가 남아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연암(鳶岩) : 만호 5리의 마을 이름. 마을에 솔개(鳶) 모양의 바위(岩)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솔개바위 : 연암리의 우리말 이름.
4. 방림리
 
방림(芳林) : 고려말에 함양(咸陽) 박씨가 정착하여 살았는데, 소나무 숲(林)이 울창하고 아름답다는(芳)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평리(泥坪里) : 방림 1리의 마을 이름. 마을이 진흙(泥)으로 된 땅(坪)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진틀 : 이평리의 우리말 이름. 진터라고도 한다.
  ① 예전에 군대가 진(陣)을 쳤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땅이 굳지 않고 질척질척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상전촌(上箭村) : 방림 2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 이 마을에서 활과 화살(箭)을 만들었으며, 지역적으로 위쪽(上)에 위치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성너머(城--) : 상전촌의 우리말 이름. 정문 동쪽을 성안으로 부르는데, 마을이 성너머에 있는 데서 유래.
하전촌(下箭村) : 방림 3리의 마을 이름. 화살을 만들던 곳으로 마을이 아래에 위치한다는 데서 유래.
살치미 : 하전촌의 우리말 이름. 화살 만드는 일을 친다고 하므로 화살치는 곳이라 는 뜻이다.
원방림(元芳林) : 방림 4리의 마을 이름. 방림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방골(芳谷) : 원방림의 우리말 이름. 뱅골. 방림리의 방자를 따서 방골이라고 하다가 뒤에 음운이 변화하여 뱅골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5. 석정리
 
석정(石井) : 마을이 처음 생길 때 먹을 물을 찾아 여러 군데를 파보았는데 서쪽편 돌(石)에서 좋은 물(井)이 나왔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감기(甘基) : 석정 1리의 마을 이름. 우물 맛이 시원하고 달았으므로(甘)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감탕(甘湯) : 감기의 다른 이름. 감탕개(甘湯介)라고도 한다. 예전에 목욕탕이 있었던 데서 유래.
신기(新基) : 석정 2리의 마을 이름. 원석정리에서 새로이(新) 터(基)를 잡아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새터말 : 신기의 우리말 이름.
야동(冶洞) : 석정 3리의 마을 이름. 마을의 형세가 대장간(冶)에서 불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풀무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풀무골의 한자식 표기이다.
풀무골 : 야동의 우리말 이름.
원석정(元石井) : 석정 4리의 마을 이름. 석정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서정리(西井里) : 원석정의 다른 이름. 마을 서쪽(西)에 좋은 우물(井)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서둔물 : 원석정의 우리말 이름.
현석(玄石) : 석정 5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 마을 밭을 개간하는 과정에서 검은(玄) 돌(石)이 많이 나왔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검은돌 : 현석의 우리말 이름.
용소(龍沼) : 석정 6리의 마을 이름. 폭포가 떨어지는 바로 밑에 있는 웅덩이(龍沼)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
용소말(龍沼-) : 용소가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장동(高壯洞) : 처음 장씨네가 입주한 데서 유래했다고 하나 정확한 것 같지는 않다.
고장말(高壯-) : 고장동의 다른 이름.
6. 신영리
 
신영(新榮) : 옛날 이곳에 면사무소와 장터가 있었는데, 그 장터가 새롭게(新) 번영(榮)하라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직산동(稷山洞) : 신영 1리의 마을 이름. 직산골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충청도 직산현에 속했던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장작골(長斫-) : 직산동의 다른 이름. 마을에 나무가 많아 장작이 흔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매상동(梅上洞) : 신영 2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 마을에 매가 많았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서두매(西斗梅) : 매상동의 다른 이름. 현덕면 두매리의 서쪽에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중간촌(中間村) : 신영 3리의 마을 이름. 중촌(中村)이라고도 한다. 신영리 가운데 중간에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양성말(陽城-) : 중간촌의 다른 이름. 예전에 양성현(陽城縣)에 속했던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가장동(佳庄洞) : 신영 4리의 마을 이름. 이곳은 근처에 가까운 곳에 수원(水源)이 있는 논이 있어 농사짓기 좋은(佳) 편편한 땅(庄)이 있는 마을(洞)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벽장골(壁墻-) : 옛날 사람들이 얼씬도 않는 아주 으슥하고 후미진 곳이었기 때문에 도망친 병사나 도피자들이 숨어 살았다고 한다. 벽장이란 울타리 밖의 험한 곳을 뜻하므로 이런 이름이 지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신전포(新田浦) : 초림지(草林地)에 새로운 밭을 개간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새밭땅 : 신전포의 우리말 이름. 새롭게 밭으로 개간한 땅을 줄여서 부른 것이다.
7. 원정리
 
원정(遠井) : 예전에 마을이 형성되었을 때 가까운데서 식수를 구하기 어려웠으나 아주 먼(遠) 곳에서 맑고 깨끗한 샘을 찾아 그것을 우물(井)로 이용한 데서 마을의 이름을 삼았다고 한다.
먼물이 : 원정의 우리말 이름. 먼무리 또는 머무리라고도 한다. 먼 곳에 있는 물을 길어다 먹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곡교(曲橋) : 원정 1리의 마을 이름. 서쪽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곳에 구부러진(曲) 돌다리(橋)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분다리 : 곡교리의 우리말 이름. 굽어진 또는 굽은 다리가 있었는데, 그것이 음운상 변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원원정(元遠井) : 원정 2리의 마을 이름. 원정리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반제(潘提) : 원정 3리의 마을 이름. 소용돌이(潘) 치는 바닷물을 막는 둑(提)이 있었던 데서 유래.
반호리(潘湖里) : 반제의 다른 이름. 예전 양성 고을에 속했을 때부터 부르던 이름이다.
쌍용(雙龍): 원정 4리의 마을 이름. 대청댐이 생기면서 그 수몰민을 옮겨와 정착하도록 한 곳으로 새로이 주택단지를 지으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1지구 : 원정 6리의 마을 이름. 대청댐 수몰민의 정착지이다.
호암(虎岩) : 원정 7리의 마을 이름. 박씨와 이씨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생겼고 마을 뒤 편에 호랑이(虎)의 형상을 한 바위(岩)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범바위 : 호암의 우리말 이름. 호랑이 형상의 바위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서반호리(西潘湖里) : 호암리의 마을 이름. 반호리의 서쪽에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남양만(南陽灣) : 원정 8리의 마을 이름. 마을이 남양만과 인접한 곳에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촌(新村) : 원정 9리의 마을 이름. 새로이(新) 형성된 마을(村)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8. 홍원리
 
홍원(洪原) : 조선시대에는 홍원(弘原)이라고도 표기하였다. 지역은 3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곶지역으로 목초지가 있었고 그곳에 군마를 놓아 길렀다고 하는데, 넓은(洪) 들(原)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마장터(馬場-) : 홍원의 다른 이름.
외원(外原) : 홍원 1리의 마을 이름. 안원-죽갈-사동 등의 마을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홍원(原)의 바깥(外) 쪽에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연백사업장(延白事業場) : 6-25 한국전쟁 이후 황해도 연백군 피난민들이 간석지를 분배받아 농사를 지으며 정착하기 시작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마장(馬場) : 홍원 2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 말을 놓아기르는 곳 (馬場)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마장(元馬場) : 이 마을에서 가장 먼저 생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자오(子午) : 홍원 3리의 마을 이름. 마을에 집을 지으면서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집을 지었는데, 이것을 풍수상 자좌오향(子坐午向)이라고 하며 그것을 줄여 자오라고 했다고 한다.
1-2-3지구 : 대청댐 수몰민들을 옮겨 살게한 곳이다.
신촌(新村) : 대청댐 수몰민들이 이주해 새로운(新) 마을(村)이 만들어진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안다리(雁多里) : 마을의 형상이 기러기가 알을 품은 듯하며, 마을 뒷산에 기러기(雁)들이 많이(多) 와서 알을 품고 서식한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9. 희곡리
 
희곡(希谷) : 마을이 평야지대에 있어 산골짜기(谷)가 드믈었다는(希)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송내(松內) : 희곡 1리의 마을 이름. 마을 주변에 소나무(松)가 울창하고 그 안쪽(內)에 마을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솔안말 : 송내의 우리말 이름. 솔안골이라고도 한다. 소나무 숲 안쪽에 있는 마을을 줄여서 부른 것이다.
일자촌(一字村) : 희곡 2리의 마을 이름. 마을의 주민들이 일자형(一字型) 집을 짓고 살았다는 데서 유래.
일자말(一字-) : 일자촌의 우리말 이름.
원희곡(元希谷) : 희곡 3리의 마을 이름. 희곡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희여울 : 희곡의 우리말 이름. 흐열이라고도 한다.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1. 권관리
 
권관(權管) : 예전에 이 마을에 권세를 부리는 아전배(衙前輩)들이 살아 권관(權官)이라고 하다가 뒤에 권관(權管)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상하동(上下洞) : 권관 1리의 마을 이름. 마을이 상부동(上部洞)과 하부동(下部洞)으로 나뉘어졌다가 합쳐지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상부동(上部洞) : 상하동의 윗마을.
하부동(下部洞) : 상하동의 아랫마을.
가삿골(佳士-) : 예전 가사면이 있던 고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잔(高棧) : 권관 2리의 마을 이름. 갯벌을 건너기 위해 높은(高) 잔다리(棧)가 있었던 데서 유래.
황새울 : 이곳 벌판에는 때가 되면 황새가 찾아와 살다가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 문곡(文谷) : 권관 3리의 마을 이름. 황새울의 다른 이름. 서당에 글(文) 배우러 오는 사람이 많은 고을(谷)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가사리(佳士里) : 권관 4리의 마을 이름. 예전 가사면(佳士面)의 소재지였다는 데서유래했다고 한다.
모산(牟山) : 밀보리(牟)가 잘되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2. 기산리
 
기산(岐山) : 현덕면 남부에 있는 옥녀봉(玉女峰)이 우뚝 솟아 있는 산(山) 줄기가 갈라진 곳(岐)에 마을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천곡(泉谷) : 기산 1리의 마을 이름. 좋은 샘물(泉)이 항상 흘러 넘치는 고을(谷:골짜기)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샘골 : 천곡의 우리말 이름. 아랫샘골이라고도 한다.
수산(水山) : 기산 2리의 마을 이름. 마을 주변의 물이 좋고 또한 뫼(山)도 좋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물뫼 : 수산의 우리말 이름. 물미라고도 하는데, 물뫼에서 변화한 것 같다.
원기산(元岐山) : 기산 3리의 마을 이름. 기산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3. 대안리
 
대안(大安) : 예전부터 마을에 부유하게 사는 사람이 많고 인심이 좋아 길손이 들면 집집마다 사랑방에 머물며 대접을 잘 하였기 때문에 이 만큼의 생활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크게(大) 편안(安)하라는 뜻에서 마을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소외(小外) : 대안 1리의 마을 이름.
  ① 작은(小) 바깥(外) 골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옛날 박씨 형제가 살았는데, 그 가운데 아우가 살던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작은박골 : 소외의 우리말 이름.
사랑현(舍廊峴) : 대안 2리의 마을 이름. 예전부터 마을이 부유해서 집집마다 사랑채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외(大外) : 대안 3리의 마을 이름.
  ① 큰(大) 바깥(外) 고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박씨 형제 가운데 형이 살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큰박골 : 대외의 우리말 이름.
구진(鳩津) : 대안 4리의 마을 이름. 구진개라고도 한다. 본래 포구였는데, 갈매기(鳩)가 많이 날아드는 나루터(津)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위경재(爲耕-) : 마을에 농사를 잘 짓는 사람이 있어 농사꾼은 모름지기 땅을 가는(耕) 것을 위주(爲)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뱀골 : 학동(學洞)이라고도 한다. 본래 마을에 서당이 있어서 배움골이라고 부르던 것을 소리나는 대로 부르면서 뱀골로 바뀌었다고 한다.
4. 덕목리
 
덕목(德睦) : 고려말 조선이 건국하자 두문동에 은거했던 어촌(漁村) 공부(孔俯) 선생이 조선왕조에서 벼슬하라는 권유를 물리치고 이 마을로 와서 살게 되었는데, 그가 덕행(德行)과 화목(和睦)을 강조했다는 데서 덕목이라고 마을 이름을 삼았다고 한다.
소당(蘇堂) : 덕목 1리의 마을 이름. 중국 송나라의 유명한 문인 소동파(蘇)의 글을 현판에 걸어놓은 집(堂)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소댕이 : 소당의 우리말 이름. 소당이 사투리식으로 발음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백석동(白石洞) : 덕목 2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 마운산 봉우리에서 날개 달린 장수가 북쪽을 향해 약 200여근 되는 차돌(白石)을 던졌는데, 그 차돌이 박힌 곳에 마을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차돌백이 : 백석동의 우리말 이름. 차돌박이에서 변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냉정동(冷井洞) : 덕목 3리의 마을 이름. 마을에 차고 시원한(冷) 우물(井)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찬우물 : 냉정동의 우리말 이름.
원덕목(元德睦) : 덕목 4리의 마을 이름. 광덕현(廣德縣)의 읍치(邑治)가 있었던 곳이다. 덕목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은곡(隱谷) : 덕목 5리의 마을 이름. 어촌 공부 선생이 이곳에 와 은거(隱)하며 살던 고을(谷)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연화동(蓮花洞) : 덕목 5리의 다른 이름. 어촌 선생이 연못을 파고 연꽃(蓮花)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문골(旌門-) : 열녀 진씨(陳氏)의 정문이 있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5. 도대리
 
도대(道垈) : 마을 앞 갯고랑에 고목나무가 한 그루가 있어 마치 배의 돛대와 같았으므로 마을 이름을 돛대라고 하다가 도대로 바뀌었다고 한다.
천곡(泉谷) : 도대 1리 마을 이름. 샘물(泉)이 유명한 고을(谷)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샘골 : 천곡의 우리말 이름.
윗샘골 : 샘골의 윗동네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바깥샘골 : 천곡의 우리말 이름. 샘골의 바깥쪽에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도대(元道垈) : 도대 2리의 마을 이름. 도대리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돛대 : 원도대의 우리말 이름. 되때라고도 하며 돛대에서 변화한 것 같다.
문곡(文谷) : 도대 3리의 마을 이름. 도문곡이라고도 한다. 예전부터 글(文)에 능한 학자들이 많이 나온 고을(谷)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글갱이 : 문곡의 우리말 이름. 글괭이라고도 한다. 글을 잘 짓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서 글쟁이라고 하다가 뒤에 변화한 것이라고 한다.
6. 방축리
 
방축(防築) : 마을 앞에 바닷물을 막는 방축을 쌓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방죽다리 : 방축의 다른 이름.
원방축(元防築) : 방축 1리의 마을 이름. 방축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방죽말 : 원방축의 다른 이름. 방죽이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국리(菊里) : 방축 2리의 마을 이름. 마을에 국화가 많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궁리(宮里) : 궁말이라고도 한다.   ① 국리에서 단순히 음운이 변화한 것 같다.   ② 마을의 형상이 활(弓)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③ 궁녀(宮女)들이 난리를 피해 이곳에 왔다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신기(新基) : 새로이(新) 터(基)를 잡고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새터 : 신기의 우리말 이름.
와촌(瓦村) : 기와집이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7. 신왕리
 
신왕(新旺) : 마을이 왕성하게(旺) 번창하고 새로워지라는(新) 소원을 담아 지었다고 한다.
마두(馬頭) : 신왕 1리의 마을 이름. 마을 뒤의 작은 봉우리의 형상이 말(馬)의 머리(頭)와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와촌(瓦村) : 가장 깊숙한 곳에 있으며 예전에 기와집(瓦)이 있던 마을(村)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신왕(元新旺) : 신왕 2리의 마을 이름. 신왕 가운데 가장 먼저 형성된 마을이라 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구씨가 처음 정착했다고 한다.
8. 운정리
 
운정(雲井) : 마을의 형상이 구름 속의 반달 모양을 닮았고, 마을에 큰 우물이 있는데 물맛이 차고 시원하며 우물 둘레에 항상 안개가 서려 있어 구름이 덮혀 있는 듯하기 때문에 구름(雲)과 우물(井)을 따서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 피우치(避憂峙) : 예전에 어떤 유명한 승려가 우강산-부엿산-을 넘으며, 이 고개를 넘으면 모든 근심을 면하고 살 수 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근심(憂)을 피하는(避) 고개(峙)라고 하였다고 한다.
원운정(元雲井) : 운정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검덩굴 : 원운정의 우리말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구억촌(九億村) : 운정 3리의 마을 이름.   ① 현덕면 최북단에 위치하여 가장 구석진 곳에 있다는 데서 구석촌이라고 하다가 구억촌으로 변화했다고 한다.   ② 예전 이 마을에서 가장 부자인 장구억(張九億)이란 사람이 일꾼에게 고기를 먹이려고 노루를 잡았다가 이후 가세가 기울어 모두 이사해 버렸으며, 마을 사람들이 장구억이 살았던 곳이라 하여 구억촌으로 마을 이름을 삼았다고 한다.
외진메 : 운정 3리의 다른 이름. 마을이 외진 곳에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9. 인광리
 
인광(仁光) : 예전부터 농가 10여호가 오순도순 살면서 어질고(仁) 착하게 살아서 그 빛(光)이 영원하기를 소원하여 인광으로 마을 이름을 삼았다고 한다.
원인광(元仁光) : 인광 1리의 마을 이름. 인광리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인괭이 : 원인광의 우리말 이름. 인광리에서 변화한 것 같다.
양지말(陽地-) : 원인광의 다른 이름. 이런 마을 이름은 북쪽으로 산을 등지고 남쪽을 향한 곳에서 주로 나타난다.
점촌(店村) : 인광 2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 옹기-질그릇-를 굽던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점촌이란 토기(土器)나 철기(鐵器) 등 수공업 제품을 만드는 곳이 밀집되어 있는 곳을 말한다.
점말(店-) : 점촌의 우리말 이름. 점(店)이 모여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하양산(下楊山) : 인광 3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 버드나무(楊)가 우거져있으며, 야산(山)을 개척하여 살았으며 그 위치가 아랫쪽(下)에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랫버들미 : 하양산의 우리말 이름. 아랫 버드나무 뫼에서 아랫버들뫼가 되었다가 뒤에 아랫버들미로 변화한 것 같다.
상양산(上楊山) : 인광 4리의 마을 이름. 하양산과 유래가 같으며 마을이 윗쪽-보통 북쪽을 뜻함-에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윗버들미 : 상양산의 우리말 이름.
문화동(文化洞) : 마을에 질서가 없고 싸움이 잦아 앞으로는 문화인다운 생활을 하자는 뜻에서 문화동으로 삼았다고 한다.
떼장거리 : 한국 전쟁이후 피난민들이 뗏장으로 집을 짓고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난민촌(難民村) : 이북 피난민들이 정착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보시동(寶蓍洞) : 옛날 마을의 어느 집에 보물(寶) 같은 수저(匙)가 있어 보시동(寶匙洞)이라고 하다가 한자가 바뀌어 현재의 보시동이 되었다고 한다.
10. 장수리
 
장수(長水) : 처음에 두메라고 불리다가 그 뜻이 좋지 않다는 여론에 따라 이름을 고쳤는데, 마을 옆으로 바다가 있어 길게(長) 물(水)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두매(斗梅) : 장수리의 다른 이름. 마을이 산너머 후미진 곳에 있는 마을이므로 두메라고 하다가 한자로 옮기면서 두매(斗梅)로 바뀌었다고 한다.
두메 : 두매의 우리말 이름.
11. 화양리
 
화양(華陽) : 예전에 이 마을이 생기던 해에 주변 마을은 장마가 지속되었으나, 이 마을은 비가 자주 오지 않고 해가 자주 났으므로 햇볕(陽)이 잘 드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현(堂峴) : 화양 1리의 마을 이름. 마을 어귀의 고개(峴) 너머에 크고 장엄한 당집(堂)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재 : 당현의 우리말 이름. 당집이 재-고개-너머에 있어 유래했다고 한다.
용동(龍洞) : 화양 2리의 마을 이름.
  ① 마을의 개울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동네 우물에서 용이 솟아 하늘로 날랐다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용골 : 용동의 우리말 이름. 용이 승천한 고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화양(元華陽) : 화양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12. 황산리
 
황산(黃山) : 마을이 야산지대(山)에 있으며, 처음에 황씨(黃)가 정착해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말기까지 안중리(安仲里)라고 불렸다고 한다.
상안중(上安仲) : 황산 1리의 마을 이름. 안중의 윗쪽에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직산장터(稷山場-) : 황산 1리의 다른 이름. 직산면, 광덕면(廣德面), 가사면(加士面) 세 고을의 중간 삼각 지대로 장터가 있었는데, 예전에는 직산현에 속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직산촌(稷山村) : 황산 2리의 다른 이름. 예전에는 이곳이 직산현(稷山)에 속한 고을(村)이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황산(元黃山) : 황산 3리의 마을 이름. 황산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느늘미 : 원황산의 우리말 이름. 느널미라고도 한다.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1. 금곡리
 
금곡(金谷) : 마을의 형상이 소가 누워있는(臥牛) 형태라 하여 소골(牛谷)이라 하다가 쇠(金) 골이 되면서 금곡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쇠누리 : 금곡의 우리말 이름. 소가 누워있다는 말에서 음운 변화한 것 같다.
관두(冠頭) : 금곡 1리의 마을 이름. 마을의 형상이 관(冠)을 쓴 모양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간두리 : 관두의 우리말 이름. 간두머리라고 한다. 관두의 우리말식 표현인 것 같다.
송내동(松內洞) : 금곡 2리의 마을 이름. 소나무(松)가 무성한 숲 안쪽(內)에 마을(洞)이 있다는 데서 유래
솔안 : 송내동의 우리말 이름. 솔안말이라고도 한다.
서란말 : 솔안말에서 변화한 것 같다.
원금곡(元金谷) : 금곡 3리의 마을 이름. 금곡리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임촌(林村) : 금곡 4리의 마을 이름. 임동(林洞)이라고도 한다. 나무 숲(林)이 울창한 마을(村)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순말 : 숲이 울창한 마을이란 뜻에서 숲말이라 했다가 음운이 변화하여 순말로 바뀐 것 같다.
2. 대반리
 
대반(大盤) : 마을의 형상이 큰(大) 밥상(盤)과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소반촌(小盤村) : 대반 1리의 마을 이름. 작은 밥상 모양이라는 뜻이다.
대반촌(大盤村) : 대반 2리의 마을 이름.
밥바위 : 소반촌의 우리말 이름. 대반리에서 작은 마을이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큰밥바위 : 대반촌의 우리말 이름. 대반리에서 큰 마을이란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창동(倉洞) : 대반 3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 큰 창고(倉)가 있던 마을(洞)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창말(倉-) : 창동의 우리말 이름. 마을 유래에서 ‘말'은 마을의 줄임말 형태로 많이 나타난다.
용두(龍頭) : 대반 4리의 마을 이름. 마을에 우물 두 개가 있는데 그것이 용(龍)의 머리(頭)와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용머리 : 용두의 우리말 이름.
신촌(新村) : 대반 5리의 마을 이름. 용두리 남쪽에 있는 주천(朱泉)이라는 숲을 경계 삼아 용두리가 뻗어나와 새로이(新) 형성된 마을(村)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새터 : 신촌의 우리말 이름. 새로운 터에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직산말(稷山-) : 대반 6리의 마을 이름. 예전에 직산현에 속했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3. 덕우리
  덕우(德佑) :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한자를 그대로 풀면 덕으로 도우라는 뜻이다.
원덕우(元德佑) : 덕우 1리의 마을 이름. 덕우리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수촌(水村) : 덕우 2리의 마을 이름. 마을 앞에 큰 숲이 있어 ‘숲촌'으로 불리다가수촌으로 변화하고 한자를 수촌(水村)으로 쓴 것 같다.
4. 삼정리
 
삼정(三井) :
  ① 마을에 세(三) 개의 큰 우물(井)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이 마을에 왕자봉(王子峰)이라는 산이 있는데, 삼정승이 나올 형세라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장수 가토오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산세를 끊어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대삼정(大三井) : 삼정 1리의 마을 이름. 삼정리 가운데 큰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동녘말 : 대삼정의 우리말 이름. 삼정리 가운데 동쪽에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중삼정(中三井) : 삼정 2리의 마을 이름. 마을의 중간에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삼정(新三井) : 삼정 3리의 마을 이름. 삼정리에서 새로이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착지촌(定着地村) : 해방 이후 이북 피난민들이 모여 정착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5. 성해리
 
성해(城海) : 포승면 석정리였다가 안중면이 생기면서 새로이 만들어진 마을인데, 성외(城外) 마을과 해조(海潮) 마을로 구성되었으므로 두 마을의 앞 글자를 따서 성해로 지었다고 한다.
성외리(城外里) : 성해 1리의 마을 이름. 조선시대에 군마(軍馬)를 기르는 목장이 있었는데, 방목하는 말이 달아나지 않도록 넓게 울타리 역할을 하는 성이 있었으며 바로 그 밖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
성밖에 : 성외리의 우리말 이름. 성밖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해조리(海潮里) : 성해 2리의 마을 이름. 3면이 바다로 쌓인 마을로 바닷물(海潮)이 들던 곳에서 유래.
해조골(海潮-) : 해조리의 다른 이름. 해조가 드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행락동(行樂洞) : 마을에 강씨네들이 살았는데, 부귀영화를 누리며 즐겁게 살았다는(行樂) 데서 유래.
행낭골 : 행락동의 우리말 이름. 행락에서 행낭으로 음운이 변화한 것 같다.
6. 송담리
 
송담(松潭) : 예전에 현덕면 인광리였는데 안중면이 생기면서 행정리가 되었다. 소나무 숲(松)이 우거진 곳에 연못(潭)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소루무지 : 송담의 우리말 이름. 송담 1리의 마을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소나무가 있는 연못과 관련된 듯하다.
7. 안중리
 
안중(安仲) : 예전에 직산 장터가 현덕면 황산리에 있었는데, 그곳의 양반인 동래(東萊) 정씨가 장사치들을 천대하여 내쫓자 추방당한 보부상들이 이 마을에 장터를 이루고 안중시장이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해방촌(解放村) : 안중 1리의 마을 이름.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황거미 : 안중 5리의 마을 이름. 거미가 사방으로 줄을 이어 먹이를 구하듯이 도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장을 봐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황금리(黃金里) : 황거미의 한자식 이름.
8. 용성리
 
용성(龍城) : 예전에 용성현(龍城縣)의 치소(治所)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그 흔적이 없으나 예전에 어느 재상이 용(龍)의 형상으로 성(城)을 쌓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용성(元龍城) : 용성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청룡말(靑龍-) : 용성 1리의 마을 이름. 마을 맞은 편에 큰 숲이 마치 푸른(靑)용(龍)이 꿈틀거리는 것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강길(康吉) : 용성 2리의 마을 이름. 마을에 항상 건강(康)하고 좋은(吉) 일이 있기를 바란다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설창(雪昌) : 용성 3리의 마을 이름.   ① 흰 눈(雪)처럼 고르게 창성(昌)하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② 고려 때 군량(軍糧)등을 저장하는 창고를 지었는데, 이곳에 저장한 양곡은 눈이 내리는 겨울에 백성을 위하여 사용하였다 하여 설창(雪倉)이라 부르게 되었다한다.
9. 학현리
 
학현(鶴峴) :
  ① 마을에 연못이 있었으며, 이 연못 언저리 나무에 학이 많이 깃들어 있어 유래했다고 한다.
  ② 마을의 형상이 학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율리(栗里) : 학현 1리의 마을 이름. 마을에 밤나무(栗)가 많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밤골 : 율리의 우리말 이름. - 배미 : 밤골에서 음운이 변화한 이름이다.
원학현(元鶴峴) : 학현 2리의 마을 이름. 학현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학현(新鶴峴) : 학현 3-4리의 마을 이름. 학현에서 가장 늦게 새로이(新) 생겼단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복덕말 : 신학현의 우리말 이름. 마을 주위 산이 북과 같다하여 ‘북덕말'이라고 하다가 ‘복덕말'로 바뀌었다고 한다.
10. 현화리
 
현화(玄華) : 처음에 현덕면 화양 3리와 4리였다가 뒤에 안중면이 독립하면서 행정리가 설치되자 본래 현덕면(玄德面) 화양리(華陽里)였으므로 그 앞자를 따서 현화리라고 했다고 한다.
행궁리(行宮里) : 현화 1리의 마을 이름. 조선시대에 평창이씨가 낙향하여 살면서 부유한 생활 속에서 활을 쏘며(行宮) 지냈다는 데서 행궁이라고 했다고 한다.
한촌(閑村) : 현화 2리의 마을 이름. 한씨(韓)들이 많이 사는 마을(村)이라는 데서 한촌(韓村)이라고 하다가 한촌(閑村)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무지개골 : 한촌의 다른 이름. 마을의 지형이 무지개의 형상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안중(安仲) : 이 마을 뒤에는 봉화를 올리던 재무덤이 있었는데, 어려운 때에 봉화를 올려 마을이 안정된다하여 안정리라고 하다가 안중으로 변화했다고 한다.